[인사이드피치] 빅리그 돌풍 이치로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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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금 이웃나라 일본인들은 한창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21세기의 새로운 도전' 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가며 미국에 수출한(?)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가 시즌 개막과 함께 맹타를 휘둘러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치로는 9일 현재 6경기에서 29타수 11안타, 타율 0.379를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메이저리그 타석에 황색 바람을 일으킨 이치로가 자신들과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초밥을 먹는다는 데 한껏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NHK는 9일 새벽 매주 생중계하던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 마지막 라운드(마스터스대회)를 제치고 이치로의 경기를 중계했을 정도다.

이치로가 비록 초반이지만 성공을 거두고 있는 비결은 뭘까.

우선 빈틈없는 준비다. 이치로는 지난해 2월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시애틀 매리너스 캠프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당시 약 1개월간 합동 훈련하면서 메이저리그를 직접 경험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한 시즌을 소화한 뒤 본격적으로 미국에 진출했다.

그 다음은 변신.

이치로의 상징은 오른발을 홈플레이트 쪽으로 내밀며 들어올리는 '시계추 타법' 이다. 그러나 그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그 자세를 포기했다. 오른발을 덜 들어 올리면서 방망이가 최대한 늦게 나온다. 그 결과 공 때리는 지점을 약 10㎝ 뒤로 가져올 수 있었다. 스피드에서 월등한 메이저리그 투수들에게 대비하기 위한 변신이다.

다음으로 보이지 않는 비결은 발과 어깨다.

이치로는 일본에서 7년 연속 타격왕에 오른 '방망이 귀신' 이지만 진정 이치로를 그답게 하는 것은 뛰어난 스피드와 강한 어깨다. NHK의 분석에 따르면 이치로가 1루에서 2루로 도루하는 순간 스피드는 초속 7.33m로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도루왕 조니 데이먼(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6.85m보다 빠르다.

강한 어깨도 한 몫 한다. 메이저리그 우익수 가운데 최고 어깨로 불리는 라울 몬데시(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홈 송구 속도는 시속 1백31.8㎞다. 이에 비해 이치로는 1백32.1㎞를 던진다. 빠르고 정확한 홈 송구 또한 이치로의 장점이다.

"타격에는 슬럼프가 있어도 수비와 발에는 슬럼프가 없다" 는 말처럼 이치로의 발과 어깨는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곧바로 통할 수 있는 '기본' 이 됐다. 이치로의 뛰어난 수비와 빠른 발은 배팅머신 1만개를 때려도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게 해준다.

바로 '게임의 지식' , 경기를 이해하는 능력, 철저한 준비, 정확히 계산된 변신, 그리고 보이지 않는 부분에까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능력을 극대화하는 치밀함. 이러한 요인들이 이치로의 돌풍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비록 초반이지만 이치로의 돌풍은 국내 선수들에게 좋은 교훈이 된다. 특히 타격은 잘하지만 수비가 형편없거나 좋은 타자는 발은 느려도 된다고 믿는 듯한 '반쪽짜리 영웅' 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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