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기 공중충돌에 미국 강경파 '침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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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1일 남중국해 하늘에서 벌어진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공중 충돌에선 중국 전투기가 추락했다. 하지만 그뒤 땅에서 벌어진 미.중간의 외교갈등에선 '부시 외교' 가 곤두박질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5일 "중국 조종사의 실종과 전투기 상실을 유감으로 생각하며 조종사와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에 앞서 부시는 지난 2일과 3일 연속으로 "사과는 못한다. 우리 정찰기와 승무원을 '즉각' 송환하라" 며 큰소리를 쳤는데 태도가 확 바뀐 것이다.

중국도 미국의 태도변화에 긍정적인 반응이어서 일단은 양국 갈등이 해결될 물꼬는 트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과 미국 내 강경파들은 이번 사건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중국 강경파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국방부가 일차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후 입을 다물었다. 대신 온건파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적극 나섰다.

파월은 지난 4일 밤 공중충돌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고 중국측에 편지를 보냄으로써 양국 갈등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만일 무사히 해결된다면 1등 공신은 파월이 될 것이다. 강경파와 온건파의 갈등이 계속되는 백악관 안에서 권력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건이 아직 종결되진 않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적지 않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집권 이후 전임 클린턴 대통령이 짜놓은 외교적 틀을 다 뒤집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중국과 사이가 벌어졌고 유럽국가들도 의심에 찬 눈길을 보냈다. 한반도에선 찬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미.중 갈등을 계기로 부시 대통령이 국제관계란 게 얼마나 조심스레 다뤄야 하는지 깨달았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럴 경우 앞으로 온건파가 득세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 내에 이미 강경보수파들이 워낙 많이 포진해 앞으로 사사건건 갈등이 계속될 수도 있다.

부시 대통령 개인으로 보면 사건이 종결된 뒤 리더십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 미 언론은 국익과 관련된 문제여서 일단 관망하고 있지만 사건이 끝나고 나면 부시가 보여준 '우왕좌왕' 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내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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