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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는 기업은 직원에게 끊임없이 지식 공급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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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호 06면

“세계경영연구원이 해외로 진출한 한국 최초의 서비스업이 될 것이란 포부를 갖고 있다”는 전성철 이사장. 그는 5월 중국 상하이에 기업 CEO를 위한 경영 교육 강의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신인섭 기자

변호사→청와대 비서관→TV 경제프로 진행자→총선 출마→대학 부총장→CEO 교육 사업자.

7년간 졸업생 9000명 배출한 세계경영연구원 전성철 이사장

세계경영연구원(IGM) 전성철(61) 이사장이 걸어온 궤적이다. IGM은 기업 CEO·임원들을 교육하는 기관이다. 2003년 3월 3일 문을 열었다. 서울 청담동에 오피스텔 하나를 세내어 시작했다. 수강생(1기)은 80명이었다. 그리고 7년이 흘렀다. 1만1000여 명(졸업생 9000명)의 ‘학생’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현정은 현대 회장, 남용 LG전자 부회장,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 윤석금 웅진 회장,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 김효준 BMW 사장,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등 명망 있는 CEO들이 과거 이곳의 학생이었거나 재학 중이다. 현재 수강 중인 임원은 2000명. 7년 전 여직원 한 명으로 시작한 연구원은 직원이 95명으로 불었다.

국내에서 CEO의 경영 교육을 전담해온 곳은 대학이었다. 하지만 IGM은 대학과 같은 조직의 뒷받침 없이 한 개인이 만들어 성공신화를 일군 사례다. 비결이 뭘까. 무엇이 CEO들을 열광케 하는 걸까. 그곳엔 ‘특별한 무엇’이 있는 걸까.

전 이사장이 내놓은 답은 ‘지식의 힘’이었다. 그는 “농경사회 땐 땅이, 산업사회에선 공장이 떡을 키워주는 원동력이었지만 지식사회에선 지식이 떡을 키워주고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원천이고 핵심”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신지식으로 무장하는 개인과 조직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수강생들을 통해 많은 기업의 부침(浮沈)을 본다. 그들을 통해 계속 학습하는 조직, 지식을 통해 변화하는 기업이 성공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 사업에 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10일 오전 서울 장충동 IGM 이사장실에서 전 이사장을 만났다.

-어떻게 IGM을 시작하게 됐습니까.
“2000년 세종대(부총장)에 2년간 있으면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운영했어요. 강사진에서 교수를 완전히 배제하고 GE·IBM 같은 다국적 기업의 CEO를 초빙해 ‘당신 기업이 위대하게 된 비결이 뭐냐’ 하는 강의를 했는데 그게 인기를 끌었어요. 사실 대학의 최고경영자 과정이란 게 강의 평가도 없고 교수에게도 인센티브가 없으니까 강의는 재미 없고 강의 시간엔 전부 휴대전화를 들고 나가 있다가 술 먹을 때 합류하는 게 보통이잖아요. 그런데 외국 기업 CEO를 모셔다 강의하고 또 강의를 공개 평가하니까 수강생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제대로 배우니까요. 첫 번째가 28기였는데, 29기가 되니까 수강생들이 ‘졸업 안 하면 안 되느냐’며 자기들이 총회를 열어 6개월짜리 코스를 1년으로 연장하고 졸업할 때 세종대 발전기금으로 3억원을 내놓고 나갔어요. 그때 지식의 힘을 느끼기 시작한 거죠.”

-2년의 경험이 바탕이 된 거군요.
“부총장을 마치고 나오니 ‘내가 혼자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자들과 상의했더니 좋아하면서 수강생(80명)까지 모집해왔어요. 그래서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서 시작한 거예요. 그게 1기생들인데 그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2기생까지는 하자’고 맘먹고 2기를 하게 된 거죠. 그때 현정은 회장 등이 참여해서 2기도 잘 됐고 그게 3기, 4기로 연결된 거죠. 지난 3일 7주년 기념일 땐 1, 2기생들을 모셔다 성대하게 파티를 했어요.”

-IGM에선 뭘 가르치는 겁니까.
“’글로벌 스탠더드와 민족의 뿌리를 찾아 세계를 얻자’는 게 IGM의 모토예요. 우리가 발전하려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민족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야 해요. 열등감·엽전의식을 갖고는 안돼요. 글로벌 스탠더드와 민족의 뿌리, 이 둘은 모순된 것 같지만 수레의 두 바퀴로 같이 가야 하는, 우리 시대의 화두인 거죠. 다른 최고경영자 과정에선 골프를 칠 때 우리는 안동 한옥마을에서 한 방에 10명씩 같이 자면서 한옥과 우리 문화를 체험하고, 그러면서 다국적 기업 CEO를 모셔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해 듣고 그랬죠.”

-CEO를 교육하는 많은 기관이 있습니다. IGM이 갖는 비교우위, 강점은 무엇입니까.
“600여 개의 최고경영자 과정이 있다고 해요. IGM은 지식을 파는 데가 아니라 가치를 전파하는 곳입니다. 일본의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은 학원이 아니잖아요. 이유는 가치를 가르치기 때문인데, 우리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가치를 가르치니까 그게 다른 곳과 제일 큰 차이점이죠. 둘째는 강의의 질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투자를 해요. 다른 교육기관에서도 CEO 교육을 하지만 자체 강의 콘텐트 없이 외부 강사를 모셔다 하죠. 우리는 석·박사로 된 강의개발팀이 30여 명 있어요. 두 시간짜리 강의를 하나 하는데 400시간 정도를 들여요. 전문강사가 12명 있는데 리허설을 통해 9점 이상 받아야 하고 강의 평가 결과는 전 직원에게 공개되죠. 강의를 개발하는 프로세스가 확립돼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프로세스를 거치면 탁월한 강의가 안 나올 수 없게 돼 있어요. CEO 교육은 대학의 전유물인데, 교수는 기껏 자기하고 조교 한두 명이 (강의 준비를) 하잖아요.”

-인맥 형성을 위한 목적으로 최고경영자 과정을 찾는 분들도 많은데요.
“과거 최고경영자 과정이 번성했던 건 사업에 필요한 인간관계를 제공해줬기 때문이에요. 산업사회에선 인간관계가 중요하죠. 내부에서 끼리끼리 해먹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세계화와 무한경쟁이 되면서 지식사회가 된 거예요. 이젠 친하다고 해서 봐주기가 어렵게 되고 본질적으로 가격이 낮거나 품질이 좋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건 지식이 있어야 가능해요. 인간관계의 중요성이 많이 줄어들고 지식이 중요해진 거죠. 지식사회가 되면서 양질의 콘텐트를 잘 제공해주는 게 필요한 때가 됐어요.”

-폭탄주를 마시면 퇴학 당하는 코스도 있다면서요.
“IGM지식클럽이란 코스예요. 여기선 강의 끝나고 술을 마시러 못 가고, 골프모임·원우회 같은 인간관계도 못하게 돼 있어요. 폭탄주를 마시면 퇴학입니다. 왜 이렇게 운영하느냐 하면 이건 졸업이 없이 계속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인간관계로 얽히면 복잡해지잖아요. 인간관계에 희석되지 말고 양질의 지식을 섭취해 나가려면 이렇게 해야 되죠. 졸업이 없는 대신 관두고 싶으면 1년마다 하는 재등록을 하지 않으면 돼요. 5년째 이 과정을 운영하는데 현재 800명이 다니고 있어요.”

-인간관계를 금지해도 수강생이 있나요.
“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이 한 학기에 1500만원 정도 드는데, 한 학기를 다니면 졸업하잖아요.… 공부를 계속 하고 싶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요. 그래서 완전히 공부만 하고 싶은 사람들은 여기 와라 해서 졸업 없는 과정을 만들었죠. 1년 수강료는 380만원이에요.”

-지식이란 뭡니까. 왜 지식이 중요해지는 건가요.
“농경사회에선 땅을 늘리는 기술이 떡을 키워줬어요. 산업사회에선 공장을 넓히고 크게 하는 기술이, 지식사회에선 지식이 떡을 가져다 주는 원천이고 핵심이에요. 동네에 중국집이 있다고 합시다. 한두 개 있을 땐 그냥 살아갈 수 있지만 개방, 세계화가 되면서 한 동네에 60~70개 중국집이 생긴다면 서로 경쟁해야 살아남게 되겠죠. 그러려면 돌아다니며 우리 집에 오라고 (로비를) 한다거나 인테리어를 근사하게 해서 될 게 아니죠. 어떻게 하면 자장면을 맛있게 만드느냐가 중요한데, 그게 바로 지식이에요. 맛있게 만드는 조리법을 배우는 것, 그런 요리사를 딴 데 뺏기지 않기 위해 인센티브 패키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 연구하는 것, 그런 게 지식인 거죠.”

-전 이사장은 경영을 가르치지만 수강생인 CEO를 통해 얻는 것도 많을 것 같은데요.
“너무 많죠. 졸업생이 9000여 명이니 9000여 개의 샘플이 있는 셈이잖아요. 수많은 기업의 부침을 봤는데, 잘 되는 기업의 공통점은 지식을 습득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업이에요. 지식이 회사에 들어가면 변화가 일어나요. 사람들은 좋다고 생각하면 하지 말라고 해도 그 길로 가죠. 민주주의가 좋다고 생각하니까 총, 칼로도 못 막는 거 아니겠어요. 반대로 지식이 공급되지 않으면 그 조직은 썩게 돼요. 내가 이 길을 가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지식을 공급받는 기업이 잘 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죠.”

-성공 케이스를 꼽는다면요.
“웅진을 들 수 있죠. 대한민국에서 지난 5년간 그룹 임원 전체를 매주 3시간씩 교육시켜온 그룹은 웅진밖에 없어요. 그렇게 하니까 회사에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앞으로 목표는 무엇입니까.
“2020년까지 전 세계 50개국에서 CEO를 가르치고 직원의 반이 외국인인 조직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우선 5월께 엑스포가 열리는 중국 상하이(上海)에 한국 기업 CEO를 위한 강의를 열게 돼요. 2단계로 내년엔 현지어로 바꾸는 작업을 할 거예요. 제조업은 세계로 많이 진출했지만 서비스업은 아직 진출한 게 없잖아요. IGM이 세계로 진출한 최초의 서비스업이 될 거란 포부를 갖고 있죠.”

-인생 이모작이란 측면에서 전 이사장은 성공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모작을 꿈꾸는 샐러리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인생 이모작은 이제 선택이 아니고 필수예요. 그러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꼭 대학원 같은 데가 아니더라도 주말 같은 때 시간을 내서 책을 읽고 잡지라도 하나 꾸준히 읽어나가는, 지적 관심을 가져야 해요. 이렇게 10, 20년간 축적이 되면 어떤 형태로든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요. …스스로를 유익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 그게 지식의 힘이죠.”

전 이사장은 한때 정치의 길을 꿈꿨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만든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그의 출신지역(대구)으로 볼 때 의외의 선택이었다. 그해 총선에서 그는 서울 강남갑 출마를 고집했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는 “강남 벨트만 아니면 수도권 어디에 나가도 당선될 텐데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했지만 뜻을 꺾지 못했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강남 출마를 고집한 거 후회하지 않으세요.
“정치는 의미나 보람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당시 로펌(김&장) 변호사, TV 스타, 신문 칼럼니스트로 이미 명예와 돈을 다 얻은 터라 그런 걸 다 버리고 단지 배지 하나 달기 위해서 간다는 건 동기 유발이 안 되더라고요. 강남갑에서 당선되면 지역 감정 해소의 새로운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해볼 만하다고 해 결정한 거였죠.”

-정치는 이제 접은 겁니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정치가 없어요. 영남 사람인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가 되고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내가 하려던 소임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노 대통령이 없었다면 나는 계속 민주당에 남아 그 길을 갔을 겁니다.”
IGM엔 협상 스쿨이란 코스가 있다. 정치와 경영을 두루 경험한 그에게 세종시 논란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삼성이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을 아무 잡음 없이 이뤄냈는데 협상의 원리로 분석해보면 기가 막힌 작품이에요. 이 전 회장의 사면을 삼성이 주도하지 않았잖아요. 평창군민과 체육계가 먼저 여론을 만들고 여기에 더해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된 거예요.… 정부가 세종시 문제를 접근한 걸 협상의 원리로 보면 아마추어예요. 여론을 돌리려면 먼저 충청도민의 마음을 샀어야 하는데 되레 충청민들은 자존심이 상해있어요. …정부가 나서기 전에 충청도민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게 했어야 해요. 충청권에도 수정안을 지지하는 사람이 30, 40% 있잖아요. 이 사람들과 각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가 따라가는 식으로 했어야 해요. …한마디로 프로 삼성, 아마추어 정부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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