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어설픈 '성매매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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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란 여성전문 기자

올 3월 31일 지은희 여성부 장관과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 그리고 최기문 경찰청장은 이례적으로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6개월 뒤 시행할 성매매 특별법과 관련한 정부의 종합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다양한 대책이 90쪽짜리 책자로 배포됐으며 별도의 12쪽짜리 합동 발표문도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뒷받침했다.

그로부터 7개월 가까이 지난 27일. 성매매 특별법 시행 한달을 맞아 당초 계획됐던 이들 3개 부처 수장의 합동 기자회견은 무산됐다.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 등이 불거져 나오면서 성매매와의 전쟁은 주요 국정 현안에서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대신 마련한 기자 브리핑에서는 여성부 담당국장이 4쪽짜리 보도자료를 들고 나왔다. 맨손으로 나오려다 그나마 기자들의 요구에 따라 급조한 것이었다. 내용은 더욱 한심했다. 법 시행 이후 언론을 비롯한 여성단체.성매매 여성 당사자까지 나서 탈(脫)성매매 여성의 자활대책을 촉구했지만 이날 여성부는 보완책을 내놓지 못했다. 예산 확보 등에 어려움이 있다며 좀더 기다려 달라는 말밖에 없었다. 현장에서는 전문 상담가가 부족해 난리인데도 다음달 22일부터 상담가 양성교육에 들어간다고 했다.

사실 성매매와의 전쟁이 벌어진 지난 한달 동안 여성부는 허둥대기만 했다. 네티즌을 중심으로 '차라리 집창촌을 만들자''단속한다고 성매매가 없어지나' 등 국민적 반발이 불거져도 이를 차분히 설득하거나 단속에 대한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반면 집창촌(일명 사창가) 업주들은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어딘지를 정확히 알아채고 성매매 여성들을 동원해 집단시위를 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성매매를 합리화했다. 또한 부산.인천 지역 집창촌 업주들은 그동안 번 돈의 일부를 자활대책에 내놓겠다고 나섰다. 여성부의 한 고위 관리는 "솔직히 성매매 여성들이 나설 줄은 몰랐다"고 털어놓으며 어설픈 전쟁 준비를 자인했다.

정부가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법만 덜렁 만들었다가 벌써부터 낭패를 보고 있는 것이다.

문경란 여성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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