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엘리트 산실 '그랑제콜 시스템' 문턱 낮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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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엘리트 재생산 기계' 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던 프랑스의 고등영재교육기관 그랑제콜 시스템에 작은 혁명이 일어났다.

그랑제콜 중 하나인 파리의 국립정치학교(IEP)가 최근 자매결연을 한 파리 근교 7개 고등학교의 우수 졸업생들을 무시험 서류전형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이같은 사실을 이달부터 관련 학교에 통보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 7개 고교 졸업생들은 다음 학기부터 그랑제콜 중 하나인 이 학교에 내신성적과 면접만으로 입학할 수 있게 됐다.

얼핏 보면 불공평한 조치 같지만 여론은 "사회 융합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간 현명한 결정" 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들 고교가 위치한 지역이 파리 근교 중에서도 빈민층이 밀집한 교육 낙후지역이어서 과거 이곳의 고교 졸업생들이 그랑제콜에 진학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랑제콜은 졸업생들이 프랑스 정.관.재계 등 각 분야의 상층부를 독점하고 있을 정도로 프랑스 사회에서 출세를 위한 필수코스다. 그러나 학생 선발과정의 폐쇄성으로 "사회 엘리트층의 자녀들만 학교 엘리트로 선발한다" 는 비난을 받아왔다. 게다가 교육기회의 불평등 심화로 그같은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는 상태다.

실제 파리 IEP나 국립행정학교(ENA), 고등사범학교 등 그랑제콜 재학생 중 서민층 출신 비율은 1950년 29%였으나 최근엔 9% 이하로 떨어졌다.

ENA의 경우 학생들의 80%가 각계의 고위 간부층이나 전문직업인 자녀들이며 이같은 비율은 1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고 있다. 경제상업학교(Essec) 역시 79%가 부유층 자제들이다.

특히 최근에는 입시제도에 밝은 교사 자녀들의 그랑제콜 입학이 두드러져 또 하나의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문제점에 따라 최근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서 그랑제콜을 개혁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여론의 호응에도 불구, 제도개혁이 당장 모든 그랑제콜로 확산될 것 같지는 않다. 대부분의 그랑제콜 관계자들은 IEP의 변화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제상업학교(ESE)의 베르나르 라마나초아 학장은 "IEP와 자매결연을 한 고교로 전학하는 학생들만 늘어날 것" 이라고 극언했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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