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출 이상기류] 上. 왜 고개 숙이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올들어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져 상대적으로 수출 여건이 좋아졌는데도 수출 증가율은 계속 둔화되고 있다. 이는 미국.일본의 경기 침체와 이에 따른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라는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내부적 요인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박사는 "환율이 1천3백원대면 국내 모든 수출산업이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조건" 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도 3월 수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게 문제" 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국내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제품의 비중이 90%나 되는 기형적 구조라서 수출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세계시장 규모는 2천79억달러이며 이 가운데 메모리 분야는 4분의1에 불과하다.

협회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는 70%가 개인용 컴퓨터(PC)에 들어가기 때문에 PC시장의 침체는 곧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으로 연결된다" 며 "정보저장에 쓰이는 메모리 반도체 (D램)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정보처리용 비메모리 분야의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지 않는 한 우리 반도체 산업은 주기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가전제품도 업체들이 해외 생산을 늘리면서 국내에서의 수출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한창 개발 중인 디지털TV.DVD 플레이어 등 신제품 시장이 열리지 않는 한 수출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 철강.석유화학.액정표시장치(LCD) 등은 세계적으로 공급 과잉이 빚어져 수출 단가가 내려가고 있다. 석유화학제품은 중동.동남아 산유국의 신규 참여와 증설로 지난해 생산능력이 19% 커지는 바람에 지난해 이맘 때 t당 8백달러였던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가격이 7백10달러로 떨어졌다.

특히 이들 국가는 원료를 자체 조달하기 때문에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기업으로선 경쟁하기가 갈수록 버거운 실정이다.

LCD도 최근 대만이 설비투자를 계속 늘리면서 세계적으로 10%의 공급 과잉이 빚어졌다. 그 결과 15인치 제품의 가격이 지난해 1월 6백25달러에서 올 1월 4백25달러로 하락했다.

철강 제품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생산량을 기록한 데다 올해 경기 침체의 여파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지난해 3월 4백55달러였던 아연도강판의 t당 가격이 최근 3백65달러로 주저앉았다.

이같은 상황 변화에 정부와 업계가 적극 대응하지 못해 수출 부진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그동안 입버릇처럼 수출시장 다변화를 외쳤지만 수출 중 미국.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22%.12%로 여전히 높다.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독감을 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올 1~2월 경쟁국인 중국은 14.5%, 싱가포르는 15%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는 세계시장이 축소돼도 경쟁력만 갖추면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국내 조선업계가 요즘 빛을 발하는 게 좋은 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원자재의 국산화 노력과 기술개발로 최대 경쟁국인 일본을 제침으로써 이미 2년반치의 일감을 확보했다" 며 "지금은 수익성이 높은 선박만 선별 수주하고 있다" 고 말했다.

같은 업종에서도 업체별로 수출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3월 중 전체 반도체 수출이 18.4% 줄어든 가운데에서도 삼성전자의 수출은 오히려 8.5% 늘었다.

이 회사 김일웅 상무는 "램버스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주력해 이들 제품의 판매 비중을 70%까지 높인 결과" 라고 말했다.

반면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는 반도체 값 폭락의 외풍을 맞아 3월 수출이 25% 가까이 감소했다. 자동차 수출도 현대자동차가 지난달 11.3% 늘어난 반면 해외 매각과 구조조정에 들어간 대우차는 43.5% 줄었다.

차진용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