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 경기침체 불똥 '수출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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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월 수출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함으로써 경제에 큰 부담을 주게 됐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30~40%에 이르는 상황에서 수출 부진은 곧 경기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병주 현대경제연구원 미시경제실장은 "정부는 올해 수출이 10%대의 신장률을 보일 것이라는 전제 아래 경제성장률을 5%로 예상했으나 현재의 수출부진이 연말까지 지속되면 성장률은 4% 아래로 떨어질 것" 이라고 내다봤다.

수출 부진의 가장 큰 요인은 세계경제의 양대축이자 우리의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과 일본의 경기침체다. 두 나라에 대한 수출증가율은 갈수록 떨어져 3월(1~20일 기준)에는 대미(對美)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 대일(對日)수출은 3.1% 감소했다.

미국.일본의 경기침체는 전 세계 시장의 동반 침체를 가져오고 있어 전반적 수출 여건은 계속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로 미국.일본에 의존도가 큰 동남아 국가로의 지난달 수출은 ▶필리핀 -26.7▶말레이시아 -24.5%▶태국 -8.3%▶싱가포르 -6.1% 등의 감소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이들 지역의 수출 비중이 높은 반도체.컴퓨터.자동차 등 우리 주력 수출품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제품의 수출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이다.

수출 비중이 15%에 이르는 반도체는 수요 감소에 가격 하락까지 겹쳐 수출 감소세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전문기관인 IDC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D램 시장 규모를 지난해보다 18% 축소된 2백38억달러로 전망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근 D램 반도체 가격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이는 일시적 반등이며 당분간 가격 약세가 이어질 것" 이라며 "반도체의 주 소비처인 정보기술(IT) 분야의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본격적인 가격 회복은 어려울 것" 이라고 말했다.

개인용 컴퓨터(PC)도 세계시장의 40%를 차지하는 미국이 공급포화 상태를 보여 삼보컴퓨터가 수출목표를 15~20% 줄여잡는 등 수출 전망이 어둡다. 자동차는 현대와 기아차의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반면 대우차의 경영정상화 지연으로 1~3월 전체 수출실적이 전년치를 밑돌았다.

유기홍 자동차공업협회 조사팀장은 "국내 자동차 수출의 25%를 차지하던 대우차 수출이 올들어 60% 이상 격감했다" 며 "대우차의 경영정상화가 늦어지면 올 1백70만대 수출목표 달성은 어려울 것" 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미국이 자국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철강 수입품에 긴급 수입제한조치(통상법 201조)를 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유럽연합(EU)은 한국 조선업체의 저가수주를 문제삼아 5월 중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방침을 밝히는 등 통상마찰 문제도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같은 수출부진의 주된 요인이 국내가 아닌 대외 여건의 문제여서 뾰족한 대책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정부는 미국.일본 지역의 수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중동.중남미 등 수출 여건이 괜찮은 지역을 공략한다는 수출시장 다변화 전략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지만 단기간 내에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 경제동향실 황인성 박사는 "미국 경기가 빨리 회복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어 답답한 상황" 이라며 "그나마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업계가 수출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일본의 엔화 가치 하락에 맞춰 원화 가치를 계속 내리는 환율 정책을 펴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차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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