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공정거래법 시행 20주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대학가에서 장당 20원씩 받고 복사를 해주며 생계를 잇는 할아버지 4명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찾았다. 이들은 "우리끼리 평화롭게 장사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젊은이가 가게를 열어 장당 15원에 복사해주고 있다" , 공정위에 '불공정하다' 고 호소했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가격은 원가나 임대장소 등 조건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경쟁의 원리를 설명했지만 노인들은 납득하지 않았다" 며 10년 전 일을 회상했다.

시장을 경쟁적으로 만드는 기능을 하는 '시장경제의 파수꾼' 공정거래위가 4월 1일로 공정거래법 시행 20주년을 맞았다.

◇ 공정거래위의 역사〓1960년대 초부터 정부 주도로 경제개발을 추진한 결과 시장의 독과점 문제가 부각되자 81년 4월 1일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시행되면서 공정거래제도가 본격 도입됐다.

공정위는 개발 연대의 그늘인 독과점적 시장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81년부터 해마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선정해 규제하고 각종 불공정 거래행위를 단속, 기업들엔 '경제검찰' 로 불려왔다.

◇ 경쟁정책 거듭나야〓공정위는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기업 구조조정의 한 축을 담당했다" 고 자평했다. 98년부터 30대 그룹간 상호 빚보증을 금지해 33조6천억원에 이르던 빚보증을 지난해 3월 말까지 완전 해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당국이 시장에 직접 개입해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된 것에 대해 은행의 역할까지 떠맡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19일 공정위 정책토론회에서 미국 경쟁법 전문가인 막스 스타이어 교수는 "경쟁당국은 경기에서 선수가 아닌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하며 심판의 역할도 적당히 통제돼야 한다" 고 강조했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공정위의 역할도 변해야 한다" 며 "경제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에서 벗어나 기업 등 경제주체간 경쟁을 촉진해 자연스럽게 독점의 폐단을 없애야 한다" 고 강조했다.

오는 6월 말까지 시장점유율을 50% 이내로 낮추는 조건으로 SK텔레콤의 기업결합을 승인한 공정위의 결정도 논란의 대상이다. 사업자가 시장점유율을 억지로 낮추는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불편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철 전경련 기획본부장은 "공정거래법의 분명하고 유일한 목적은 경쟁촉진을 통한 효율의 증진" 이라고 주장했다.

서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