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남북관계 추측보도 너무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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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해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 기사는 양적으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이해와 화해의 시각으로 접근하면서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보도 방식과 비교해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는 현상은 무리한 추측 기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지난주 눈길을 끈 북측의 고(故) 정주영 회장 조문사절단의 방문과 남북탁구 단일팀 무산에 관한 기사에서도 이러한 관행이 또다시 나타났다.

'김정일 애도 뜻만 전했을까' (3월 26일자 4면) 기사를 보면 제목부터가 추측에 기초한 기사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기사 본문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

"…그냥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논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는 식의 추측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한편 '구두 약속 끝내 무산' (3월 29일자 3면) 제목의 남북탁구 단일팀 구성이 무산된 배경을 담고 있는 기사에서도 취재원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보인다고 말했다" 라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능성이 있다" "…전망도 나온다" 와 같은 추측하는 내용이 많았다.

물론 북한 관련 보도는 북한의 폐쇄성으로 인한 정보 접근의 제한과 취재원의 노출기피 등으로 추측성 기사가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무리한 추측 기사는 억측을 낳고, 억측은 오보를 만들 소지가 많다. 북한 관련 기사는 오보를 해도 확인이 잘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지나치게 추측하는 경향이 있다.

기자는 사실(fact)에 대한 분석과 판단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언론은 기자의 해석과 처방이 들어간 주관적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주관적 영역은 기자의 사실에 대한 치열한 확인 작업과 진실 보도를 한다는 투철한 책임 의식에 근거해야 할 것이다.

남북 관계 기사의 추측 보도는 자칫 북한에 대한 왜곡된 선입견을 조장할 수 있고, 남북간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우려는 가뜩이나 주요 언론에 대해 심기가 불편한 정부로 하여금 자칫 언론을 통제해야 한다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가 '북한, 노동당 규약 개정 약속'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 중앙일보 청와대 출입기자에 대해 출입정지 조치를 내린 사례가 이를 잘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 '본지 기자 청와대 일시 출입 금지 등 한국정부, 남북 관계 보도 과민반응' <3월 31일자 2면> )

3월 26일은 월요일이었다. 1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초등생 25% O, B양 동영상 봤다' 는 제목의 기사가 바로 그 것.

이 기사를 꼭 1면에 게재할 필요가 있었을까? 신뢰도나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인터넷 설문조사를 기초로 마치 현실의 반영인양 1면에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대표적인 선정적 보도의 유형이다.

어떻게 어느 여고 1년생 한개반의 조사를 갖고 "절반이 원조교제 유혹을 받았다" 고 거침없이 보도할 수 있는가?

이에 반해 3월 31일 토요일의 1면 기사는 아름다웠다. '장애 신입생 단 한명 위해 휠체어 다니게 시설 개조 사랑의 학교' 란 제목의 기사를 다른 신문들은 사회면 귀퉁이에 작게 게재한 반면 중앙일보는 톱기사로 올렸다.

두 개의 서로 다른 1면 머리기사를 보면서 중앙일보가 추구하는 표어 '사람을 받든다' '사회를 밝힌다' '미래를 펼친다' 를 생각해 보았다.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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