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브랜드 경쟁 과열… 헐값판매 등 부작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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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농산물 브랜드(상표)가 난립, 출혈경쟁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자체.농협은 물론 개인까지 나서 마구잡이로 브랜드화를 추진하다보니 브랜드의 생명인 '품질에 대한 소비자 인식' 이 흐려져 홍보비만 날리거나 'oo지역産' 이라고 표시했을 때보다 가격은 더 떨어지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실태=과거 '예산 사과' 로 명성을 날리던 충남 예산군의 경우 현재 읍.면 농협별로 10여개의 브랜드가 난립, 소비자들이 상품을 고르는 데 혼란을 주고 있다. 군에서 예산사과 대표 브랜드로 '으뜸' 이란 상표를 출원했지만 별로 사용되지 않아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토마토와 꽈리고추 등 예산지역 10개 특산품도 작목반과 농협별로 각각 다른 상표를 달아 팔고 있다.

충남도내 쌀 브랜드도 도가 특허를 얻은 '청풍명월' 을 비롯 28개에 이른다. 이가운데 상표나 의장등록을 한 브랜드는 9개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해당 지역 농협 등이 자체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서천군은 서천동백쌀.건강미인.철새도래지쌀.금강청결미쌀.황금빛보약쌀 등 8개로 가장 많고 홍성군이 6개의 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브랜드가 난립하는 것은 일선 농협.작목반.미곡처리반 등이 경쟁적으로 상표를 개발, 공동사용 승인을 신청하면 지자체가 별다른 제한없이 승인해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부작용=전문가들은 브랜드 난립으로 지역특산물의 우수한 품질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도 특화된 상품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또 대외적으로 마케팅이 개별적으로 추진돼 과열경쟁으로 오히려 가격하락을 부채질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 전국최대 곡창인 호남평야 김제쌀의 경우 '지평선' 은 20㎏ 한포에 4만6천~4만7천원씩을 받고 있지만, 지역내 다른 브랜드 제품은 4만1천원~3만9천원씩에 거래되고 있다. 마트 등에서는 브랜드간 경쟁을 유도하며 판매를 기피, 가격을 낮추는 일이 빈번하다.

이렇다 보니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브랜드화를 추진했다가 해마다 늘어나는 재고 때문에 적자를 보거나 파산하는 사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 대책=농산물 브랜드가 당초 취지에 맞게 제값을 받기 위해서는 시.군 등 단위 지역별로 상표를 통합하는 일이 급선무다.

전북도와 농협이 군산.정읍.김제.부안 등 지자체와 함께 97년부터 쓰기 시작한 공동 브랜드 'EQ-2000' 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오를만큼 전북도의 앞선 쌀의 이미지를 굳혔다. 이 쌀은 지난해만 1만여t이 팔렸다.

충남도 관계자는 "난립한 브랜드로 제각각 시장공략에 나서봤자 현재의 유통구조로 볼 때 경쟁력이 떨어지기 마련" 이라며 "공동브랜드를 집중 육성해야 소비자들에게 파고 들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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