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국방부 '강·온 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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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둘러싼 국무부와 국방부의 대립이 갈수록 심해져 부시 대통령에게 상충되는 내용의 보고서가 올라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7일 보도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강경파 일색으로 주변을 둘러싸고, 반면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온건론자들을 계속 임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쪽 다 결전을 앞두고 자기쪽 병력을 보충하고 있는 양상이다.

럼즈펠드는 레이건 행정부 때 국방부에서 일한 더글러스 파이스를 국방부 정책책임자로 선택했다. 닉슨센터의 보수주의자 피터 로드먼도 국방부 국제안보보좌관이 됐다. 그러자 파월은 대표적 온건론자인 리처드 하스를 국무부의 정책기획담당자에 임명했다.

양측의 강온 대립은 곳곳에서 구체화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몰아내려면 이라크 내의 반군에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무부는 오히려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방부가 유럽국가들이 자체적으로 신속대응군을 만드는 것을 반대하지만 국무부는 그 계획에 긍정적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최근 유럽의 한 외교관에게 "이라크 제재나 유럽 신속대응군 문제에 대한 국무부의 결정이 최종이 아니다" 고 말했다. 국무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다양한 견해를 수용해 제대로 결정만 내리면 큰 문제는 아니다. 어떤 정권에든 그런 갈등은 있게 마련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행정부 내의 갈등이 공개적인 외부 분열로 이어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레이건 행정부 때 온건파였던 조지 슐츠 국무장관과 강경파였던 캐스퍼 와인버거 국방장관은 서로 갈등을 거듭하다 결국 와인버거가 옷을 벗었다.

뉴욕타임스는 비록 부시 행정부가 초기이긴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보면 갈등이 제대로 봉합되지 않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행정부 내의 강경파들이 학계.연구소.언론계의 보수 인사들에게 "계속 몰아붙여라" 고 독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파월은 가급적 동맹국과 협조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럼즈펠드는 미국의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지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런 상황이 발생한 이유는 부시가 외교경험이 없어 외부의 조언에 강력하게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대통령의 귀' 를 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딕 체니 부통령은 이같은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지만 국방부쪽에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분류된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정책의 조화를 이루는 중재자의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 국무부와 국방부의 갈등에서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부시 대통령이 결국 누군가의 손을 들어줘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북한.러시아.중국과 대만.이라크.중동.발칸반도 등 국제정세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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