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통해 본 '정주영의 현대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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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정주영(鄭周永)전 명예회장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22일 증시의 반응은 차분했다.

임원들의 사표 제출로 미국 AIG로부터의 외자유치 기대감이 커진 현대증권이 13% 가량 급등한 것을 제외하면 현대 관련주들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 거인' 의 퇴장은 증권시장에도 짙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1974년 첫 상장된 현대자동차를 비롯, 그가 씨앗을 뿌린 상장사가 22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때 주도주 자리를 독차지하며 증시를 호령하던 현대 관련사들은 지난해부터 잇따라 불거진 안팎의 악재로 주가가 급락한 것은 물론 한국 기업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 증시의 발목을 잡는다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받고 있다.

◇ 경제 기여도 비해 주가는 낮아〓현대자동차 등 최근에 계열분리됐지만 鄭명예회장이 일으킨 기업들을 포함한 현대 관련 상장사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는 99년 말 현재 18.2%에 달한다. 하지만 당시 현대 관련주의 시가총액은 9조6백30억원으로 전체 시가총액 1백43조원의 6.32%에 불과했다.

현대 관련주의 시가총액 비중은 96년 4.92%에서 지난해 말 7.96%까지 꾸준히 늘었지만 지난 21일 현재 6.78%로 1%포인트 이상 비중이 축소됐다. 현대전자 등 계열사의 위기가 주가에 반영된 탓이다.

현대 관련 상장사는 현대자동차를 시작으로 70년대 5개사, 80년대 6개사, 90년대 5개사가 상장되며 99년에는 모두 24개사에 달했다.

◇ 최근 주가하락 극심〓현대그룹의 모체인 현대건설은 84년 9천원에 상장된 뒤 정부의 주택 2백만호 건설 등 대형 호재에 힘입어 89년 초 3만3천원선까지 급등했다.

이후 건설경기 위축으로 92년 한때 1만원 미만까지 떨어지기도 했으나 94년부터 2년여 동안 4만원을 넘나드는 초강세를 보였다.

현대건설 주가는 94년 10월 19일 4만7천5백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지난 22일 현재 1천5백25원으로 마감돼 96.8% 하락했다.

다른 계열사도 상황은 비슷하다. 현대증권 주가는 99년 4만9천원까지 치솟았으나 21일 현재 5천7백50원으로 88.27% 하락했고 현대종합상사도 96년 2만4천8백원에서 2천7백50원으로 88.91% 내렸다.

계열분리를 끝냈거나 예정 중인 기아자동차와 현대백화점.현대중공업 등의 경우는 최근 5년간 고점 대비 하락률이 60%대여서 상대적으로 주가가 덜 떨어진 편이다.

◇ 단기 중립.중장기 호재 전망〓鄭명예회장의 타계로 증시가 단기적으로 받을 영향은 미미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들어 전자와 건설.증권 등 핵심 계열사들의 구조조정 등 주요 경영사항에 전혀 간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주가도 계열사별 실적에 따라 차별화되리라는 전망이 많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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