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 생각은…

간도문제 우물쭈물할 시간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간도 문제는 더 이상 늦출 시간이 없다. 왜냐하면 국제적으로 100년이 지나면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관례가 있기 때문인데 그 기간이 바로 2009년이다. 중국은 국경선을 주권으로 하는 현재의 역사를 주장하며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 민족의 역사였던 고구려사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간도 문제 역시 이러한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간도는 지리적으로 서간도(압록강 지역)와 동.북간도(두만강 지역)로 구분할 수 있지만 지금은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는 옌볜(延邊)자치주를 중심지역으로 잡고 있다.

하지만 간도는 1712년 세워진 백두산 정계비에도 청나라와 조선의 국경으로 서쪽은 압록강, 동쪽은 토문강을 양국의 경계로 삼고 있다. 또한 '청국은 예전과 같이 토문강 이북의 개간지에 있어서 조선인의 거주를 승인한다'라고 돼 있다. 이러한 근거로 볼 때 간도 지역은 일본에서도 우리 민족이 거주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중국은 토문을 두만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토문은 이미 두만강과는 명백하게 다른 강임이 증명됐다.

국경선 회담은 정계비를 세운 이후 두 차례(1885, 1887년)에 걸쳐 이뤄졌지만 문제를 명확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이에 조선에서는 간도 관리사를 파견해 우리 민족을 보호했지만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조약(1905년)으로 간도 지역에 통감부 파출소를 설립(1907년)했다. 이후 일본은 러.일전쟁으로 러시아의 이권을 이어받아 간도 지역에 대한 침략을 더욱 노골화하면서 1909년 7개의 '간도에 관한 청.일협약(간도협약)'을 맺어 간도 지역의 영토권과 4대 이권을 청나라에 넘겨줬다. 당시 간도엔 중국인보다 더 많은 9만여명의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는 간도가 우리의 역사와 전통문화가 계승되고 있었던 지역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는 한.중, 한.일 간의 영토 및 역사 문제에서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간도 문제는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이 함께 얽혀 있는 매우 복잡한 역사 문제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국내외의 문헌사료와 자료를 발굴하고 이를 연구하는 학술 연구 전문가집단의 역량을 결집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서양에서 제작된 고지도를 통한 당시의 국경선 문제를 연구하는 학술 세미나와 이를 바탕으로 한 고지도 전시회를 개최해 영토의 역사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과 국민적 의식을 고취시키고 해외 공관과 관련 기관을 통한 교육적 홍보를 해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 성과를 정보화하고 네트워크화하는 학술적 연구 환경도 구축해야 한다. 또한 다가올 통일시대를 대비한 남북한 및 동북아 국가 간의 공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국가 위상이 강화되고 주변 국가에 대한 우리 역사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영국이 홍콩에 대한 식민통치 기간을 연장하려 하자 영국과 직접 담판하면서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청나라가 아니다. 홍콩은 불평등한 조약으로 점령됐다. 따라서 불평등한 조약은 당연히 무효'라고 말했다. 덩샤오핑의 말대로라면 우리의 국권이 박탈되고 체결됐던 간도협약은 당연히 무효다.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김혜정 경희대 혜정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