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다시 읽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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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 책을 고전으로 추천하는 것을 보고 혹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의아해 할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애들 책을" 하며 놀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잘 봐줘서 "아!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추천하는가 보다"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루이스 캐럴의『Alice's Adventure in Wonderland』(이하 『앨리스』로 표기)를 어떤 장르를 넘어선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전공과 세대의 구분 없이 읽는 책이다. 굳이 이 책의 범주를 정한다면 '어른이 읽어야 할 동화' 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캐럴 연구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마틴 가드너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캐럴의 작품들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앨리스를 주인공으로 한 캐럴의 책들을 읽기 위해 무척 노력했지만 일관성 없는 줄거리, 갑작스런 전환, 별로 유쾌하지 않은 캐릭터들 때문에 의욕을 상실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가드너는 캐럴의 해학.역설, 그리고 문장의 논리 구조와 그에 함축된 철학적 의미 등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앨리스' 가 아이들보다는 최소한 틴에이저에 맞는 책이라고 한다. 그 자신 20대 때 다시 읽으면서는 자기가 어렸을 때 놓친 것을 발견하고 황홀경에 빠졌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비춰 오늘날 영어권의 독자들조차 해제의 도움 없이『앨리스』를 제대로 읽기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가드너의 예는 우리가 '앨리스' 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독서의 대상이자 또한 '연구' 의 대상이다. 그것도 심도 있는 연구의 대상이다.

그 관심 영역도 영문학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논리학.수학.언어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연관된다. 『앨리스』는 대학 교재로도 손색이 없다.

우리가 학제적(學際的)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들은 이미 주위에 많이 있다. 관심과 관찰의 의지가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철학적 성찰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어떤 출판 편집자는『앨리스』를 "이 세상에서 가장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 이라고 했는데, 이 짧은 지면에 무엇을 꼭 집어 말하겠는가.

한두 가지만 말해 보자. 『앨리스』가 수많은 패러디, 난센스, 말의 퍼즐, 부조리한 명제, 어처구니없는 시구, 웃기는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평론가들이 흔히 관찰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19세기 사람 캐럴은 21세기에도 흥미로운 스토리텔러고 엔터테이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에 대한 캐럴의 뜨끔한 지적이다. 그런 장치들을 통해 인간은 이성과 언어로 얼마나 세상을 인지하고 삶의 의미를 포착하는지 묻고 있기 때문이다.

가드너가 느꼈던 것처럼 일관성의 결여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앨리스' 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화두는 있다. 그것은 '차원의 상대성' 에 관한 문제다.

구체적으로는 치수에 대한 것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몸의 치수 변화로 시작해 치수 변화로 끝난다.

이 화두로 캐럴은 이야기 전체를 꿰뚫며 주위 상황과 대비되는 자아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다각적으로 집요하게 물고늘어진다.

"너는 누구냐" 는 쐐기벌레의 물음에 앨리스는 겁에 질려 "나는 나 자신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나는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라고 답한다.

국내 번역본 중엔 존 테니엘의 원본 그림을 살린 하드커버 완역본이 시공사에서 나온 바 있다. 시공사측은 조만간 소프트커버로 다시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제목은 원래 뜻을 살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로 굳어지는 것 같은데, 우리말의 '이상한' 이 갖는 어감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영어의 원더(Wonder)는 다양한 의미를 복합적으로 내포하고 있어 번역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이상한' 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이와 연관해 '원더풀(Wonderful)' 이란 말을 들었을 때의 어감을 한번 생각해 보라. 쉽게 간과할 것이 아니라 서양을 이해하는 문제 중 하나다. 경이로움이나 신기함이라면 몰라도 제목에서부터 거리감을 두는 표현으로 이 작품을 '이상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가.

김용석 철학자.전 로마 그레고리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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