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리 '야당 비하 발언' 사과 없자 한나라 대부분 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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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해찬 총리가 대독한 노무현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들으면서 종이쪽지에 메모하고 있다. ‘야당 무시발언?-그 지지 국민도 무시…’ 등의 글이 적힌 메모엔 한나라당에 사과하길 거부한 이 총리에 대한 불쾌감이 잘 나타나 있다. 조용철 기자

25일 오전 10시 국회 본회의장. 대통령 시정연설을 대신 읽으러 나온 이해찬 총리가 단상에 오르자 한나라당 의석에선 일제히 "총리, 사과하세요"라는 고함이 터져나왔다. 이 총리가 지난주 유럽 순방기간 중 일부 기자에게 "한나라당이 나쁜 건 세상이 다 안다"고 말한 것을 사과하라는 요구다. 그간 한나라당은 이 총리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하고 사과를 요구했으나 이 총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연방 "너무 오만한 것 아닙니까. 야당 비하발언 사과하고 시작하세요"라고 소리치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시장에 들어왔어. 왜 이렇게 떠들어"라며 총리를 엄호했다. 이 총리는 의원석의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원고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바로 홍준표 의원이 "나가자"며 맨 먼저 일어나 퇴장한 것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한나라당 의원이 항의 표시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당 대표, 김덕룡 원내대표 등 20여명만이 남아 시정연설을 지켜봤다.

여야의 평가도 극과 극을 달렸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온건하고 절제된 언어가 돋보였고 야당이 더 이상 반발할 수 없도록 했다"고 치켜세웠다.

반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대통령이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는지 안하는지를 모호하게 한 것은 헌재 결정에 무게를 안 두겠다는 것 아니냐"며 "(수도 이전과 관련한 혼란에 대해선) 대통령이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며 사과하지 않고 버티는 태도는 국민이 평가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문수 의원은 시정연설 뒤 의원총회에서 "노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수도 이전을 추진한 만큼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난 날 자신의 말에 따라 사퇴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김정하.김성탁 기자 <wormhole@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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