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침묵의 위대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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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호 02면

영화 ‘위대한 침묵(사진)’을 봤습니다. 162분, 무려 2시간42분 동안 대사는 거의 안 나오는 영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엄격한 수도원의 일상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 보여주는 영화. 몇몇 극장에서 하루 한두 번밖에 상영을 안 하는데도 매진 행렬이 이어진다는 영화. 그렇게 소리소문 없이 본 사람이 어느새 9만 명을 돌파했다는 바로 그 영화였습니다.

솔직히 세 번 졸았습니다. 세 번째 깨어나니 머리가 좀 맑아지더군요. 영화 속 수도사님들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묵묵히. 아무 대사가 없으니 어떤 소리라도 들리는 게 우선 고마웠습니다. 물소리, 빗소리, 바람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습니다. 이발사 수도사의 전기 바리캉 소리엔 속이 후련해질 정도였습니다.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저분들은 말도 안 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낼까’ ‘입이 그냥 밥 먹는 용이라면’ ‘삶에서 소리란, 사람에게 말이란 무엇일까’ ‘말은 무엇을 담아야 할까’ ‘내면의 소리는 말과 어떻게 다른가’ 등등. 마침 제가 영화를 본 2월 24일 저녁 씨네코드 선재에서는『수도원 기행』의 저자인 공지영 작가와의 대화 자리가 마련돼 있었습니다. 사실 그의 생각을 듣고 싶어 이날 보러간 것이죠. 공 작가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침묵이 아니다. 입을 닫고 있어도 마음속으로 복잡한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침묵이라 할 수 없다.” 아, ‘침묵’은 정말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말 없는 말. 생각 있는 말. 생각 없는 말. 말 있는 생각. 말 없는 생각. 그리고 말과 생각.

팸플릿에는 ‘언어가 사라진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보기 시작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아무 말 없는 스크린을 보다 보니, 문득 나는 왜 사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 시간을 구하려 사람들은 그렇게 조용히 극장을 찾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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