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가계부채 곪기 전에 소프트랜딩으로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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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해 기준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가계의 이자 비용은 오히려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국 가구(2인 이상)들은 지난해 가구당 평균 80만3772원의 이자를 내, 일년 사이에 이자 부담이 3.1% 늘어났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담보 대출이 꾸준히 늘어난 데다 금융회사들이 대출금리 인하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734조원에 육박했고 부동산 담보 대출 증가율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가계가 저축을 하고 기업은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서는 기존의 구도까지 깨지고 있다. 오히려 지난해 기업들은 215조원을 은행에 예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금리와 고환율에 힘입어 수익을 많이 거뒀지만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 설비투자 대신 은행 예금을 택한 셈이다. 이 가운데 만기가 1년 이상인 저축성 예금이 85%를 차지한 것도 건강한 현상이 아니다. 그만큼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는 것이다.

물론 가계부채가 당장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는 위기론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이 소득 상위 계층에 집중된 만큼 상환 부담을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 부동산 담보 대출에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라는 안전판도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방치해선 안 된다. 가계부채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웃도는 현상이 지속되면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상황이 곪기 전에 가계부채 문제를 소프트랜딩시키기 위한 전략을 단단히 세워놔야 한다.

가계부채 증가에 제동을 거는 방법의 하나는 금리인상이다. 그러나 그건 경제 전반에 무차별 충격을 주는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최선의 방책은 소프트랜딩이다. 주택담보대출의 증가를 막으려면 부동산 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소프트랜딩은 가계부채보다 소득이 더 빨리 증가해야 가능한 일이다. 가계 소득을 늘리려면 기업이 투자에 나서고 일자리가 더 많이 생겨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기업의 투자 의욕 유도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야 ‘기업의 돈잔치-가계의 빚잔치’라는 잘못된 구도도 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