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가계부채 대책 서서히 확실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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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금 그의 재테크 성적표는 어떨까. 집값이 다소 오르긴 했지만 그동안 들어간 이자 등을 감안하면 아직 손실이라고 했다. “괜히 샀다” 하는 후회가 반,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반이라고 했다.

걱정거리는 앞으로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내는 대출금리는 연 4% 수준이다. 가끔 외식도 하고 있지만, 금리가 오르면 이것도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말 가계 빚이 1년 전보다 45조4000억원 늘어난 733조7000억원으로 불어난 것은 A씨와 같은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뜻이다. 그것도 경제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빚을 내 집을 산 사람이 많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도 연간 약 7조원, 2%포인트 오르면 연간 14조원의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가계가 원리금 상환에 더 많은 돈을 쓰면 씀씀이가 줄어 소비가 감소한다. 경기 회복세에도 찬물을 끼얹는다.

또 가계가 빚을 못 갚으면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가 부실해진다. 이게 쌓이면 경제 전체에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가계 부채는 개인의 재테크를 떠나 경제 전반에 파장을 주는 심각한 문제다.

전문가들은 이미 “가계 부채 문제는 한국 경제에 또 다른 위기를 가져올 뇌관이 될 수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대책이란 게 하늘 아래 새로울 수가 없다. 평소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 정부는 지금처럼 일자리 정책에 주력하고,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주택정책을 펴면 된다. 정책담당자들이 공연히 “가계 부채, 문제없다”고 떠들고 다니면 오히려 불안해진다. 금리 변동이 완만하고 만기가 긴 대출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금융사들의 몫이다. 여기에 가계의 현명한 판단과 위험 관리가 더해져야 한다. 이 모든 게 큰물 흐르듯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이뤄져야 사고를 피할 수 있다.

A씨에게 물어봤다. 지금 다시 결정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대답은 이랬다.

“빚을 내 집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나처럼 과도한 빚을 내는 것만은 꼭 말리고 싶다.”

김원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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