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미협 또 진흙탕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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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가 또 다시 소송분쟁에 휘말렸다.

미협은 지난 1월 정기총회를 열고 제19대 이사장으로 곽석손(군산대 교수)씨를 선출, 새 집행부를 출범시켰다. 이에 대해 당시 경쟁 후보였던 이영수(단국대 교수), 이운식(강원대 교수)씨측이 연합해 반기를 든 것. 이들은 지난 16일 '선거가 무효' 라며 이사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지방법원에 제출했다.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지방회원에게 직접 투표권을 부여한 18대 집행부의 결정이 무효라는 것. 긴급성이 없는 사안을 서면결의로 결정하면서 우편집계 마감시한도 수개월씩 연장했다는 흠을 지적하고 있다.

둘째, 현 집행부측이 표를 매수했다는 주장이다. 지방회원 회비가 서울의 특정은행에서 무더기 납부된 사례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곽석손 이사장측은 "대응할 가치도 없는 억지 주장" 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측의 행동인지 확인되지 않았을 뿐 회비 무더기 납부사례 자체는 사실로 드러나 있어 선거의 과열과 혼탁을 짐작케 해준다.

예술인들의 단체인 미협에서 정치나 종교단체 내분을 연상시키는 법정싸움이 잦아지게 된 데는 배경이 있다.

첫째,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심사, 공공시설 환경조형물 설치작가 선정, 해외 국제전 참여작가 선정 등의 권한이다. 수억원씩의 선거자금이 뿌려진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선거가 과열되는 이유다.

둘째, 주류인 홍익대파와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비홍익대파의 뿌리깊은 대립이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방회원들의 불만까지 가세하면서 세력다툼이 더 복잡하고 치열해졌다.

회원의 친목을 도모하고 권익을 옹호하며 미술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미협의 설립목표이며 존립근거다. 그럼에도 패거리 지어 이권이나 다툰다면 차라리 해체하는 게 낫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거를 폐지하고 과거처럼 명망있는 원로를 이사장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당도 아닌 마당에 우리처럼 전국 조직을 갖고 있는 미술인 단체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고 한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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