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 핵심산업, 글로벌 공급과잉에 대책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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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의 주력산업인 반도체·자동차·LCD·조선·철강·석유화학이 제2라운드 경쟁 국면을 맞고 있다. 선진국들의 일부 과잉 설비가 폐쇄됐지만 개발도상국들이 더 빠른 속도로 설비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에 밀렸던 일본·대만의 반도체나 LCD 업체들도 경제위기가 진정되는 틈을 타 대규모 시설투자 계획을 앞다투어 발표하는 등 ‘패자의 역습’에 나서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 주력 수출품의 국제 가격은 약보합세로 돌아서고 있다. 제2의 치킨 게임이 도래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우리 경제의 최대 불안요인으론 글로벌 공급과잉이 꼽힌다. 한국자동차공업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자동차 공급과잉은 역대 최대 수준인 2900만 대에 이를 전망이다. 공급과잉률이 56.7%나 된다. 철강의 경우 중국이 중소 제철소를 무더기로 퇴출시켰지만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37.7%의 생산설비가 남아돌고 있다. LCD는 전 세계 주요 업체들이 중국시장을 놓고 현지공장 건설에 혈안이 돼 있다. 중동 국가들의 석유화학 설비투자 역시 도를 넘고 있다.

글로벌 공급과잉에 대처하려면 세계 주요20개국(G20) 회의 등에서 공동 해법을 찾는 게 공멸을 막는 최선책이다. 물론 국익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만큼 실마리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게 분명하다. 기업들도 투자를 외면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어 덩치 불리기 게임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생존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수익성은 나빠지고 견제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이 이미 자국(自國) 선박은 그들의 조선소에만 건조를 맡기는 등 보호무역 조짐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 차원의 대안인 신(新)산업 육성이나 내수 확대는 장기적인 해법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뼈를 깎는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지금은 신흥시장에 초점을 맞추는 경영전략과 기술개발, 엄격한 품질관리로 제2의 치킨게임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다른 방도가 없다. 가뜩이나 환율 여건도 좋지 않은데 한국의 주력 산업들이 심각한 생존경쟁에 노출되고 있다. 자칫 2010년은 우리 기업들이 고전하는 가장 힘든 한 해가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