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사계] 배부른 중국 '기네스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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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달 28일 베이징(北京)시내 따관위안(大觀園)공원을 찾은 관광객들은 깜짝 놀랐다.반바지 차림 남녀 수십명이 커다란 얼음덩이 위에 앉아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호수의 얼음을 깨고 수영을 즐기는 광경을 보는건 흔하다.

하지만 이처럼 얼음 위에 앉은 ‘중국판 로뎅’을 집단으로 목격하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무슨 까닭일까.기네스 기록 도전이 정답이다.

‘누가 추운 날씨에 가장 오래 버티나’ 대회가 열린 것이다.영하 3도의 날씨속에 벌어진 이 대회에는 48명이 참가했고 올해 40세인 왕중핑(王中平)이 무려 4시간 30분동안 단 한번도 얼음 위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아 영예의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물론 기네스 북에 올랐다.

그 사흘 뒤인 지난달 31일.스촨(四川)성 난충(南充)시에서는 뱀의 해인 올해 29세의 여성 왕수이롄(汪水蓮)이 또하나의 기네스 기록 도전에 나서 화제를 뿌렸다.

이미 2백여마리의 뱀들과 1년간 동거를 한 왕이 기네스 기록을 못 깰까봐 뱀들과의 동거를 1년 더 연장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그녀는 뱀과 생활하며 독사들에게 십여차례나 물려 죽을 고비도 몇차례 넘겼지만 막무가내였다.

지난8일 멀리 남극에선 중국인에 의해 또하나의 기네스 기록이 작성됐다.

45세의 왕강이(王剛義)가 수온 섭씨 1.4도의 남극 바다에서 52분간에 걸쳐 약1천5백m를 헤엄쳐 이 부문 세계 기록을 수립했다.

이처럼 중국은 최근 그야말로 기네스 기록 도전 열풍에 휩싸여 있다.

기폭제는 지난해8월 당시 36세의 베이징 체육대학 교수 장잰(張健)이 발해(渤海)만 1백23Km를 50시간22분만에 헤엄쳐 건너면서부터다.

중국인의 기개를 떨치고 해협 수영 부문에서 기네스 기록을 작성한 張에 갈채가 쏟아지며 기네스 도전 지망자가 양산됐다.

지난해10월5일엔 중국산 경비행기로 장쑤(江蘇)성 타이후(太湖)교각의 아래를 통과하는 극한(極限)비행 기네스 기록이 작성됐다.

이튿날엔 중국의 위구르족 청년인 아디리(阿地力)가 헝산(衡山)의 두 산봉우리 사이 1천4백m 외줄타기에 성공해 95년 캐나다인이 세운 1천3백m 기록을 깨는 기염을 토했다.

중국의 기네스 열풍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 한숨 돌린 중국인들이 여유를 찾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두 해전까지 기네스 북에 등록된 중국 케이스는 20여건이었다.그러나 지난해 두배인 40건으로 뛰었다.

신청 건수가 지난 한해만 수백여건에 달했다고 상하이(上海)기네스 본부는 밝혔다.

하지만 이런 열풍이 진정한 인간의지의 도전과 시험이라기 보다는 상업적 이유가 배경에 깔려있다는 비판도 있다.

기업이 홍보 효과를 노리고 중국인들 1년 월급에 해당할 2∼3만위안을 걸고 지원자들을 모집하자 죽기살기로 기록에 도전하게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중국은 기네스 기록에 도전자들에게 ‘중국 특색’의 기준을 적용키로 했다.

건강에 유익하고,의미가 있어야 하며 국가정책에 부합해야 한다는 세가지 조건이다.

구성원이 1백40명이나 되는 가족이 나왔지만 상하이 기네스 본부가 조사를 한 결과 이 가정은 중국의 한자녀 정책에 위반해 기록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나저나 ‘지대물박(地大物博,땅은 크고 물산은 많다)의 나라’인 중국에선 하도 기이하고 신기한 일도 많아 세계의 기네스 기록 상당수가 앞으로 중국인에 의해 채워지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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