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 가득 툇마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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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호 11면

봄바람에 실린 오후의 햇볕이 따뜻하게 내립니다. 여럿이 악양, 대촌마을을 기웃거리며 다녔습니다. 시간이 켜켜이 묻은 나무지게나 항아리, 쪽문이 아름다운 흙벽에 비친 감나무 그림자. 넋이 빠졌습니다.

[PHOTO ESSAY]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길을 막아선 바위를 돌아드니 좁은 길 끝에 늙어 아름다운 집에 할머니 두 분이 눈에 ‘확’ 뜨였습니다. 툇마루에 앉아 봄볕도 즐기고, 낮술도 즐기시던 할머니들이 낯선 놈들을 반겼습니다. 나뭇결 고운 부엌문, 녹슨 함석지붕, 붉은 할머니 얼굴이 합쳐져 시간여행에 빠졌습니다.

“내 집 문을 들어왔으니 손님이야.” “어서 와서 이거 마시게.”
몇 마디 말을 나누곤 사진 찍기에 여념 없던 ‘놈’이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황망하게 음료수를 쪽쪽 빨아 먹고 나서는데 할머니 말씀이 뒤에서 이어집니다.
“사진 찍어 돈 많이 벌어.” “젊은이들은 돈 많이 벌어야 돼.”
봄볕보다 더 따뜻한 할머니 마음을 등에 이고, 늙어 아름다운 집을 나섰습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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