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동안거(冬安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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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유에 의해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수행법을 불교에서는 선(禪)이라고 한다.

경전의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정각(正覺)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래서 선은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내세운다. 경전의 논리적 해석만 좇다 보면 결국 목적인 성불(成佛)은 잊어버리고 그 방법에만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다.

'지월지(指月脂)' 의 가르침이다. 목적인 달은 보지 못하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마는 꼴이 돼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선을 행하는 선승(禪僧)들은 보통 주변환경을 정리하고 가사와 장삼을 정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등을 곧게 펴고 단정히 앉은 채로 양발을 서로 다른쪽 발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결가부좌를 틀고 좌선(坐禪)에 들어간다.

인생의 1백8가지 번뇌에서 벗어나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다. 스승이 준 화두(話頭)를 붙잡고 확실하게 깨닫는 철오(徹悟)의 순간을 향한 고행길이기도 하다.

참선 가운데는 하루 24시간 앉은 자세 그대로 물만 마시고 버티는 용맹정진(勇猛精進)도 있다.

석가모니는 6년 고행 후 보리수 밑에서 도를 깨친 후에도 틈날 때마다 좌선을 계속했다. 수행할 때부터 열반(涅槃)에 이를 때까지 일관되게 선을 실천한 것이다.

전국 82개 선원에서 3개월의 동안거(冬安居)를 마친 1천6백66명의 선승이 그제 해제법회를 갖고 다시 만행(卍行)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2월 9일자 15면). 그들은 각기 정해진 선원별로 하루 10~18시간씩 벽을 바라본 채 묵언(默言) 속에 참선수행을 했다.

산문(山門)을 나선 선승들은 석달 뒤 하안거(夏安居)에 들어갈 때까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며 '구도의 길' 을 계속 걷게 된다고 한다.

선은 마음이 곧 부처라는 '심즉시불(心卽是佛)' 의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부처를 세상 밖에 존재하는 절대적 존재로 보지 않고 누구나 마음 속에 갖고 있는 불성(佛性)으로 본다.

그래서 불교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부처의 씨' 를 갖고 있다고 가르친다. 일상의 삶에 찌들어 사는 속인(俗人)들로서는 동안거를 할 수 있는 선승들의 '여유' 가 부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스님일 필요는 없다.

다만 하루 중 잠깐만이라도 틈을 내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혹시 알겠는가. 그러다 어느 순간 내 마음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부처의 얼굴을 만나게 될지….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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