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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영화] 21그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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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면

감독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투르 주연 : 숀 펜.베네치오 델 토로.나오미 와츠 장르 : 드라마 등급 : 18세 관람가

홈페이지 : (www.21grams.co.kr)
20자평 : 영혼의 무게 21g, 남은 삶의 무게는?

삶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다. 모든 걸 가졌다고 생각했을 때 모두 다 잃고, 거꾸로 모든 걸 포기했을 때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21그램'은 우연한 사건 하나로 얽힌 세 사람을 통해 이런 삶의 아이러니, 그리고 그 삶을 지탱하는 영혼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주제는 이렇게 진지하고 무겁지만 결코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다. 오히려 시간 순서와 공간을 무시한 독특한 편집은 영화로 퍼즐을 맞추는 묘한 재미까지 덤으로 준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마지막 순간 완벽한 하나의 그림으로 짜맞춰질 때의 쾌감은 만만치 않다.

누군가의 죽음을 담보로만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남자, 행복에 겨운 순간에 모든 걸 잃어버린 여자, 구원받았다고 믿었을 때 버림받은 남자….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면 결코 만날 일이 없었을 세 사람의 인생이 한 지점에 다다르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죽음만 기다리던 대학교수 폴(숀 펜)은 한밤중 기대하지 않았던 심장이식 수술을 받고 또 다른 삶을 얻는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으로 새 인생을 부여받았다는 죄책감에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기증자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그의 몸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은 두 딸과 함께 차에 치여 죽은 마이클의 것이며, 홀로 남겨진 그의 아내 크리스티나(나오미 와츠)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감에 스스로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크리스티나는 사고를 낸 잭(베네치오 델 토로)이 온갖 흉폭한 범죄로 감옥을 수없이 드나들었던 전과자인 데다, 살릴 수 있었던 작은 딸을 두고 뺑소니를 쳤다는 사실에 더욱 몸서리친다. 폴은 이런 크리스티나 주위를 맴돌다 사랑에 빠져 잭에게 복수할 기회를 엿본다.

'21그램'의 매력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다층적인 캐릭터에도 촉촉히 스며들어 있다. 폴이 느끼는 사랑의 무게와 크리스티나가 품은 복수의 무게만큼이나 잭이 짊어진 죄의 무게는 육중하다. 2년 전 감옥에서 나온 후 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며 회개했던 잭은 복권에 당첨된 돈으로 산 트럭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고는 절망한다. 그는 "내 삶 전부를 드렸지만 (신은) 날 버리셨다"며 "망할 트럭을 주시고 세 사람을 죽이게 하셨지만 그들을 구할 용기는 주지 않았다"고 분노하며 팔에 새긴 십자가 문신을 스스로 도려낸다.

영화의 제목 '21그램'은 영혼의 무게다.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람은 숨진 직후 21g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폴과 크리스티나, 그리고 잭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든 영혼의 무게가 초콜릿 바 하나의 무게밖에 되지 않는 고작 21g이라니.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투르 감독은 첫 장편영화 '아모레스 페로스'로 2001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됐던 실력파. 2003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관객상을 휩쓴 세 주연배우의 연기는 감독의 연출력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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