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승 범-
어린 것들 데불고
아이들 돌아간 후
명절 끝 아랫목은
느슨하여 즐거웁다
한순간
장지문 햇살에
새말갛게
밀어든다
고운 햇살이여
거슬러 오르다 보니
장지문에 어린 수묵
벽오동 빈 곁가지
고은당(古隱堂)
거처하시던
그 공간이
여실하다
문갑 위 난초분도
파르란 기운 넘쳐 있고
돌담 밑 꽃밭자락
일렁이는 흙향기 속을
고은당
그리다가 깨니
장지문 햇살
간 곳 없다
◇ 시작노트
설명절의 다음날, 연휴의 끝날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저들의 둥지로 돌아가고 집안은 다시 고요하다.
무료하다. 그러나, 이 하루만은 일상의 시간을 잊기로 했다. 휑한 방의 아랫목에 몸을 붙였다. 모처럼 구들장의 정감에 젖는다. 사지가 노글거린다.
개운함이여. 고향의 옛집 새로 바른 장지문에 어린 햇살처럼 환한 느낌이다.
고은당께서 돌아가신지도 어느덧 41년. 저 어른의 화초사랑 한가지에도 미치지 못한 미련퉁이인 자신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약력>약력>
▶1931년 전북 남원출생
▶58년 '현대문학' 통해 등단
▶ '후조의 노래' , '설청' , '바람처럼 구름처럼' 등의 시집과 수필집 다수
장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