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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1월] 초대시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장지문 햇살에>

-최 승 범-

어린 것들 데불고

아이들 돌아간 후

명절 끝 아랫목은

느슨하여 즐거웁다

한순간

장지문 햇살에

새말갛게

밀어든다

고운 햇살이여

거슬러 오르다 보니

장지문에 어린 수묵

벽오동 빈 곁가지

고은당(古隱堂)

거처하시던

그 공간이

여실하다

문갑 위 난초분도

파르란 기운 넘쳐 있고

돌담 밑 꽃밭자락

일렁이는 흙향기 속을

고은당

그리다가 깨니

장지문 햇살

간 곳 없다

◇ 시작노트

설명절의 다음날, 연휴의 끝날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저들의 둥지로 돌아가고 집안은 다시 고요하다.

무료하다. 그러나, 이 하루만은 일상의 시간을 잊기로 했다. 휑한 방의 아랫목에 몸을 붙였다. 모처럼 구들장의 정감에 젖는다. 사지가 노글거린다.

개운함이여. 고향의 옛집 새로 바른 장지문에 어린 햇살처럼 환한 느낌이다.

고은당께서 돌아가신지도 어느덧 41년. 저 어른의 화초사랑 한가지에도 미치지 못한 미련퉁이인 자신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약력>

▶1931년 전북 남원출생

▶58년 '현대문학' 통해 등단

▶ '후조의 노래' , '설청' , '바람처럼 구름처럼' 등의 시집과 수필집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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