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더불어] 몽골 동심의 "가나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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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19일 오전 서울 광진구 광장동 광나루 고시원 지하 재한(在韓)몽골학교. 50여명의 몽골 아이들이 한국말로 된 교과서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30평 남짓한 이 공간은 몽골 불법체류자 아동을 위해 서울 외국인근로자 선교회가 운영하는 사설 학교. 몽골학교는 수준에 따라 기초반.초등반.중등반 등 다섯개 반으로 운영된다.

반별로 교실을 따로 낼 형편이 안돼 이동식 칸막이로 공간을 나누고 온풍기도 한 대뿐이지만 아이들은 추위도 잊고 공부에 열심이다.

1998년 한국에 들어온 툭심바이어(14)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갈 곳도 없고 한국말도 못해 어려웠다" 며 "이곳에 다니면서 한국말도 많이 늘었고 학교 생활도 즐겁다" 고 말했다.

몽골학교는 99년 12월 일부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재학생 여덟명으로 문을 열었다. 개교 직전 외국인근로자선교회에서 몽골 아이들 세명을 모아 한국어를 가르친 게 이 학교의 전신.

지금은 재학생만 50여명, 이곳을 거쳐간 아이들을 합하면 90명이 넘는다. 간디마(13).간딜마(9)자매는 경기도 광주군 곤지암에서 1시간20분 걸리는 학교를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매일 등교한다.

아직 한국정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비인가 학교지만 몽골 정부로부터 정식 학교로 인정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몽골학교 교감 권성희(權成姬.여.50)목사는 "전체 19만여명의 불법체류자들 중 1만3천여명의 몽골인들은 유목민의 특성 때문인지 대부분 자녀를 데리고 온다" 며 "대다수가 현지에서 상류층에 속하고 교육열도 높지만 한국에선 교육시설이 전무해 좌절하곤 한다" 고 말했다.

몽골학교에서는 한국어.몽골어.수학 외에도 올해부터 바른생활.슬기로운 생활 등 우리나라 교과 과정에 맞춰 시간표를 다시 짰다.

수업은 아침 9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權목사, 몽골인 전임교사 1명과 5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돌아가며 아이들을 가르친다.

자원봉사자들이 일주일에 한시간꼴로 수업을 맡다 보니 간혹 교사 한명이 다섯반을 모두 지도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직 담임교사를 둘 만큼 넉넉하지 못한 상황. 학교 운영은 홀트아동복지회 등 몇몇 단체와 개인 후원금으로 이뤄진다. 외국인근로자 선교회에서는 점심 급식을 제공한다.

지난 12일에는 광진구청이 후원해 눈썰매장으로 소풍도 다녀왔다.

權목사는 "몽골 어린이들이 불법체류자 자녀라는 점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해 집에 혼자 있거나 애티만 벗으면 일터에 나가는 게 안쓰러워 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며 "몽골 아이들끼리 서로 한국말도 배우고 한국에 적응하는 법을 익힐 수 있어 효과적" 이라고 말했다. 전화 02-3437-7078.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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