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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설] 하루 휴일… 세배는 신정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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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설연휴를 맞아 올해도 예외없이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그러나 북한에서 설은 여느 일요일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휴일에 지나지 않는다.남한에서는 설 앞뒤를 포함 3일을 쉬지만 북한에선 '음력설'하루만 쉰다.

50년 넘게 양력설을 쇠왔기 때문에 양력 설맞이에 익숙하다.당연히 주민들은 세배 등 전래의 설풍습을 양력설인 1월 1일에 치른다.

북한에서 전통 명절이 공식적으로 부활된 지는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북한은 1948년 정권 수립 이후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민족명절을 통제해 오다가 88년 추석명절 모습을 보도한데 이어 89년부터 음력설 ·한식 ·단오날을 '휴식일'로 지정했다.

'전래의 민속 풍습인 음력설을 잘 쇠도록 하라'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음력설과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는 풍습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남한에서도 85년 신정을 설날로 바꾸고, 구정을 '민속의 날'로 지정해 하루 쉬도록 했다가 국민들의 반대로 89년에 '설날'로 이름을 바꿔 3일 연휴로 돌아간 우여곡절이 있었다.

남북에서 설풍경이 바뀌기는 했지만 새해를 맞아 연하장을 주고받고 친지를 찾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에선 올해 특히 주민들간의 연하장 교환이 부쩍 늘었다. 재일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1월 8일자는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사망한 뒤 3년의 애도기간에 연하장 교환이 대폭 줄었다가 98년부터 늘기 시작해 올해는 '폭발적'이었다고 보도했다.

평양시 중구역 서창동 일대를 담당하는 평양시우편국 서창체신분소에서는 연하장 배달양이 지난해의 2∼3배였다.

북한 주민들의 신정맞이는 남한의 설 풍경에 못지않다. 새해 첫날 주민들은 가까운 곳에 사는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을 찾아뵙는다.시부모와 친정부모 모두 떨어져 사는 경우 번갈아 찾아가기도 한다.

우리같은 '귀경전쟁' 사태는 없다. 교통난, 직장근무 등으로 먼 지역의 부모님을 뵙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세뱃돈이나 선물을 주는 풍속은 거의 없어졌다.

가족친지가 모여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며 윷놀이, 주패(카드)놀이를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연날리기 등 마을단위의 민속놀이 행사도 열린다.

남북의 설문화 차이는 인사예법에서 두드러진다.주로 선 자세로 머리를 숙이면서 '새해를 축하합니다', '새해에 건강하십시오'라고 말한다.

엎드려 절하는 세배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선 자세에서 머리숙여 인사하는 것(선절)을 절의 한 종류로 인식하는 탓이다.

올해 설맞이 모임에서 특이한 것은 학생들이 金주석과 金위원장의 초상을 향해 큰절을 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부모와 형제에게 먼저 설인사를 올리도록 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김위원장이 "관례를 벗어나 학생·소년들이 사회주의 건설에서 노력적 위훈을 떨치고 있는 인민들에게 먼저 설 인사를 하게 해야한다"고 지시했다는게 북한언론의 설명이다.

연초부터 '새로운 사고'를 강조하는 북한의 변모된 모습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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