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는 지침 위반해 돈 쌓아두고 “다 썼다”며 등록금 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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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탐사팀이 밝혀낸 ‘부당 적립을 통한 등록금 인상’은 사립대에서 거의 일반화된 현상이었다.

‘예산편성 금액 늘리기→이를 근거로 등록금 인상→결산 때 수백억원씩 남기기→남은 돈은 예산에 없던 적립금으로 쌓기’.

회계상 적립금을 쌓는 것은 지출 항목에 잡힌다. 따라서 이듬해 수입으로 잡아야 할 남은 돈을 사립대들은 “다 썼다”며 지출로 짜맞추는 셈이라는 게 회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등록금 기준 예산 어떻게 짜나=탐사팀은 서울의 주요 사립대 10곳의 2004∼2008년간 예산·결산 내역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수년간 사립대 회계감사를 맡았던 A법인 회계사도 참여했다. 분석 결과 홍익대의 경우 예·결산 차액을 2004년 607억원→2005년 446억원→2006년 517억원→2007년 782억원→2008년 610억원씩 남겼다. 차액이 생긴 건 계획보다 덜 썼기 때문이다. 지출할 곳이 바뀌었거나 씀씀이를 아껴서 그럴 수도 있다. 문제는 차액 규모가 엄청난 데다 매년 반복된다는 점이다. 남은 돈을 적립금으로 돌려 놓고 이듬해 예산은 또 규모를 늘려 잡았다. 2004년 이후 홍익대의 예산 규모는 1865억원에서 2766억원까지 불었다. 2007년도 예·결산 차액(782억원)은 학교 예산(2511억원)의 31% 규모다. 회계사는 “통상 용인되는 예·결산 차액의 범위는 예산의 5% 이내”라고 지적했다.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다. 건국대·경희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숙명여대·연세대·이화여대·한양대·홍익대 등 사립대 10곳에서 매년 예·결산 차액이 71억~782억원까지 발생했다.

◆회계 규칙 위반하며 적립금 쌓기=교육부령에 따르면 예산 혹은 추경 예산에 없는 적립금은 적립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사학진흥재단 자료에 따르면 10개대가 2006∼2008년까지 예산과 달리 쌓은 적립금은 총 7392억원에 달했다. 최종 추경예산에서조차 시정되지 않았다.

2008년 홍익대의 경우 적립금 예산이 33억원이었으나 결산 때는 649억원을 쌓았다. 세부 항목인 건축 기금의 경우 당초 ‘0원’이었다가 618억원이나 적립됐다. 홍익대의 지난 5년간 기부금 수입은 61억∼281억원이다. 추가 적립된 것이 기부금에서 나왔다고 볼 수도 없다. 사립대 주수입은 등록금이다. 기부금·재단전입금·국고보조금 등의 기타수입도 있다. 이 중 등록금과 기부금을 제하면 수백억원의 적립금을 만들기에는 부족하다. 등록금을 받아 남긴 돈을 부당 적립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홍익대 서완국 경리과장은 “무슨 조항을 위반했는지 모르겠다”며 “(교육부에) 보고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분석에 참여한 한 회계사는 “남는 돈은 이사회를 열어 예산안을 수정해 최종 추경을 확정하거나 이월해야 한다”며 “회계 규칙을 위반해 적립했다”고 지적했다.

◆돈 남아도 등록금은 인상=대학들이 차액의 대부분을 적립금으로 전용한 뒤 일부만을 이월한 결과 자연스레 등록금 인상 근거가 생긴다. 수백억원의 예·결산 차액이 남아도 등록금 인상은 억제되지 않는 구조다. 전문가들이 “주요 사립대의 등록금은 10% 이상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많은 대학이 등록금 동결을 발표한 올 초 연세대는 등록금을 2.5% 인상했다. 서강대(3.34%)·홍익대(2.8%)·한양대(2.8%) 등 다른 사립대들이 뒤따랐다. 교과부의 구자문 사립대학지원과장은 “대학의 내부 감사가 예·결산상 위반이 있다고 보고하지 않는 한 교과부는 대학 회계를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홍렬 전 서울시 교육위원은 “교육부의 그 같은 사고방식 탓에 대학 예산이 문란해졌다. 적립금의 적립 및 사용을 사전에 보고토록 한 것은 등록금으로 쌓은 것을 막겠다는 취지인데 교육부부터 그같은 규칙을 사문화해 버렸다”라고 지적했다.

◆적립금=기부금, 기타 자산수입으로 특정 사업(연구·건축·장학·퇴직 등)을 위해 별도로 예치해 두는 준비금. 교육부령(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 제22조 2항, 특례규칙 제12조)은 “적립 및 사용 계획을 사전에 관할청에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탐사기획팀=김시래·진세근·이승녕·김준술·고성표·권근영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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