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기고 싶은 이야기' 96회로 마감한 이호왕박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1면

"바이러스 연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출혈열 혼합백신과 뎅기열 진단키트도 마저 개발해야지요. "

1월 12일자로 본지의 연재물 '남기고 싶은 이야기(96편 바이러스와 반세기)' 를 끝낸 학술원 회장 이호왕(72.李鎬汪.사진)박사는 남은 여생도 연구에 몸바칠 것을 다짐한다.

아시아에 많은 한탄바이러스와 유럽에 많은 퓨물라바이러스를 동시에 예방할 수 있는 혼합백신은 이미 개발이 끝나 내년 초 러시아 바시키리아 공화국으로 수출할 예정이다.

열대지방 풍토병인 뎅기열의 진단키트도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다.

李박사는 1976년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 한탄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해 국제학계에 족적을 남긴 인물. 88년 백신 개발까지 성공해 한국이 전세계 출혈열 연구의 메카로 자리잡는데 기여했다.

"지금까지 잡은 쥐가 5만마리는 족히 될 겁니다. 전국을 샅샅이 뒤졌지요. "

덕분에 해마다 2천여명씩 발생하던 유행성출혈열이 7백여명으로 줄었으며 백신을 의무적으로 접종하는 군인은 2백여명에서 20여명으로 줄었다.

아직도 오전엔 실험실이 있는 녹십자 목암연구소를 찾고 있다는 李박사의 건강비결은 마음의 여유. 남들은 한두해 실패를 거듭하면 그만둘 연구도 그는 여유를 갖고 꾸준히 진행한다.

89년 유행성출혈열 진단키트의 개발성공도 11년이나 걸렸다.

"정상인도 날마다 50여개씩 암세포가 생기지만 킬러세포가 이를 찾아내 죽이지요. 킬러세포의 천적이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

또다른 비결은 운동. "퇴근 후 매일 1시간30분씩 헬스클럽에서 운동합니다. 누워서 1백20㎏짜리 덤벨을 번쩍 들어올리면 젊은이들도 놀라곤 하지요. "

고희를 넘긴 연령치곤 믿어지지 않는 근력이다.

낙후한 국내 기초과학의 발전을 위한 노학자의 충고는 뜻밖에도 상업주의에 대한 경계다.

"최근 일고 있는 바이오 벤처 붐은 내실있게 연구역량을 다지기보다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과대포장과 반짝 발표를 일삼는 등 거품을 부추기고 있어 문제입니다. "

생명공학은 수십년의 연구 노하우가 쌓여야 비로소 유용한 결과가 나오는데 국내 학자들이 그럴듯한 간판만 내세워 서둘러 벤처에 뛰어들고 있는 모습은 우려할 만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TV프로 '왕건' 을 즐겨본다. 그가 생각하는 왕건은 용장(勇將)이 아닌 덕장(德將). 정치인이라면 덕장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후학에겐 노회한 덕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부터 강조한다. 논문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사람 좋다는 이야길 듣는 것은 학자로서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홍혜걸 기자.의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