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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식인 지도] 사이드의 반오리엔탈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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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에드워드 W. 사이드(66)가 1978년 출간한 『오리엔탈리즘』(이 말은 적당한 우리말 번역이 없이 원어 그대로 사용된다.

굳이 번역하자면 '동양주의' '동양학' 등이 될 것이다)은 서양이 행사해 온 지배구조를 전복하려는 한 지식인의 지적(知的)시도였다.

팔레스타인 출신인 이 지식인에 의하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적 축적물인 오리엔탈리즘은 사회적으로 '공인된 착각' 이었다. 그것은 동양을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해 서양이 가공해 낸 것이다.

사이드가 열거하는, 버젓이 진리로 행사해 온 '공인된 착각' 의 목록은 지리 할 정도로 길다.

"유럽인이 타고난 논리학자라면, 동양인은 정확성을 결여하고 있다. 둔감하고 의심이 많으며 상습적 거짓말쟁이인 동양인의 심성은 앵글로-색슨 인종의 명석함.솔직함.고귀함과 대조된다. 비합리적이고 열등하며 유치한 동양인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성숙한 정상적 유럽인에 비하면 비정상이다" 등등….

그러나 동양에 대한 서양의 상투적 편견을 단순히 재생하는 데 그쳤다면,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은 그저 야트막한 구릉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것이 근대 학문의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봉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식론적이며 실천적인 문제의식 덕분이다.

왜, 그리고 어떻게 동양에 대한 서양의 편견과 착각이 공인된 진리로 자리 잡았으며 또 그것이 갖는 정치적.실천적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이 그것이다.

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사이드가 꾀한 것은 일차적으로 근대 서양이 구축한 진리에 대한 반란이다.

학문적 진리라고 주장해 온 오리엔탈리즘이 실은 편견과 착각의 산물임을 드러내자는 것이다.

그것은 서양이 독점한 학문적 헤게모니를 거부하려는 몸짓이며, 서양이 주도한 근대 문명에 대한 거역이다.

버나드 루이스(85.영국의 이슬람학자) 같은 서양의 동양학 연구자들이 사이드의 저서는 서양의 동양학 연구를 왜곡하고 오염시키는 선동적인 책이라고 반발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자신들의 학문적 기반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논리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편견과 착각이 진리로 공인 받을 수 있었는가? 사이드에 의하면 이 마술을 가능케 해준 것은 무엇보다도 제국의 권력이다.

제국은 군대의 무력 사용이나 억압적인 행정기구와 조세제도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유지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제국은 식민지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명하다.

식민지인들이 문화적 헤게모니에 종속될 때, 그것은 제국에 대한 자발적 복종으로 이어지며 통치비용을 절감한다.

식민지 동양에 대한 제국의 담론을 구성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제국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구성하는 주요한 축이다.

제국의 지배체제는 물리적 억압 장치뿐만 아니라 자신을 유연하게 재생산하는 문화적 기제(機制)를 갖는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제국의 헤게모니 시스템의 후자에 주목한다. 이것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 이탈리아의 좌파 사회학자)의 헤게모니론, 미셸 푸코(1926~84년, 프랑스 철학자)의 지식권력, 레이먼드 윌리엄스(1921~88년, 영국 '문화연구' 의 문을 열음)의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에서 사이드가 이끌어 낸 통찰이다.

이렇게 볼 때, 동양에 대한 서양의 편견은 제국주의자들만이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식권력의 메커니즘을 통해 식민지 피지배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침투하여, 제국의 지배를 매끄럽게 해준다.

알제리 식민지 민중의 심성에 대한 프란츠 파농(1925~61년, 알제리의 정신병리학자.철학자)의 정교한 정신분석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탈식민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의식의 식민화' 과정이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만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서양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하면서도 서양을 따라야 할 모델로 간주하는 식민지인들의 이중성이 배태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는 서양을 철저하게 배격하면서도 인식론적으로는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식민지 민족주의의 이중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투쟁이 정치권력의 차원을 넘어서 문화권력과 지식권력의 차원에서 동시에 전개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식민지인들만이 오리엔탈리즘의 피해자라고 간주한다면 오산이다. 서양의 근대문명에서 배제된 서양의 민중들 또한 숨겨진 피해자이다.

'상상의 지리(地理)' 로서의 동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다발은 서양의 근대권력이 배제하고자 했던 요소들이었다.

'동양적 정체성' 은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여 근대 권력에 버림받은 서양의 주변인들이 갖고 있는 속성이기도 했다. 오리엔탈리즘은 요컨대 근대 서양의 권력담론인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이 학문적 진리체계가 아니라 권력담론임이 폭로되는 순간, 은폐된 서양의 우상은 설 땅을 잃는다.

다양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이드의 문제제기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나 서벌턴(subaltern.인도에서 일어난 탈식민주의적 역사연구경향) 연구집단에게 계승되는 것도 이 점에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과대 포장된 서양문명에 제몫을 찾아주려는 주변부 지식인들의 학술운동인 것이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사이드는 누구

▶1935년 영국령이던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출생

▶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 빅토리아대에서 공부하다 50년대 말 미국으로 이주.

▶57년 프린스턴대 졸업(문학.음악.철학 전공)

▶60.64년 영문학.비교문학 전공으로 하버드대 석사 및 박사

▶77~91년 팔레스타인 국가평의회(망명국회)의원

▶97~99년 미국 어문학회 회장

▶현재 컬럼비아대 석좌 교수 및 미국학술원 회원

◇관련 저작들은

<번역서>

▶문화와 제국주의(창.95년)

▶권력과 지성인(창.96년)

▶오리엔탈리즘(교보문고.2000년)

<미번역서>

▶팔레스타인의 문제(79년)

▶세계, 텍스트 그리고 비평가(88년)

▶음악적 서술(91년)

▶박탈의 정치학(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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