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박근혜(오른쪽) 한나라당 전 대표와 김무성(왼쪽) 의원이 갈등하고 있다. 친박인 김무성 의원이 헌법재판소 등 독립기관들을 세종시로 보내자는 절충안을 제시하면서다. 김 의원은 20일 “기자회견을 하면 다소간 관계가 어려워질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친박이다’ ‘아니다’라는 얘기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김형수 기자
‘친박 아니다’라는 건 박 전 대표의 뜻일 것
김무성 의원은 20일 경남 남해에 가 있었다. 지인들과 모임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과 박 전 대표의 의중을 담은 발언을 두고 언론들이 ‘박 전 대표와 사실상 결별’이라고 보도한 것에 대해 씁쓸해했다. 또 ‘친박에 좌장이 없다’ ‘정치 철학이 다르면 친박이 아니다’란 박 전 대표 측근들의 말에는 상처가 큰 듯했다. 그와 전화로 현재 심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기자회견이 분란을 만들 것이라곤 예상을 못했나.
“여러 번 말했지만 기자회견은 진짜 충정에서 한 것이다. 세종시를 둘러싼 상황이 너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 많은 고민을 했다. 국민들이 짜증스러워 하고 있다. 자기 주장만 있고 상대방의 입장은 없다. 양보는 안 하려고 한다. 정치는 협상과 절충이다. 서로 명예롭게 물러서지 않고 있다. 내가 내놓은 안은 나름대로 묘수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의 수가 나올 수가 없다. 당내 문제라 의총에서 할 수도 있었지만 세종시 신안에 반대하는 야당도 있고 충청도민도 있어서 기자회견을 한 것이다. 기자회견을 한 후 이 안을 가지고 의총에서 얘기할 수 있다고 봤다.”
-누구보다 박 전 대표를 잘 알지 않느냐. 이런 방법이면 박 전 대표와의 관계가 더 꼬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세종시 문제는 처음부터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정책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소신은 밝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나는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뜻을 오래 전에 밝혔다(김 의원은 지난해 10월 한 케이블TV에 출연해 세종시 신안을 지지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세종시 문제가 격한 싸움으로 가버렸다. 그런 상황이면 누군가 말려야 하는데…. 다소간 관계가 어려워 질 것이란 생각은 했다. 하지만 ‘친박이다’ ‘아니다’라는 얘기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기자회견에서 ‘관성에 젖어 거부하지 말라’는 발언이 갈등을 증폭시켰다는 시각이 많다.
“지금 상황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어 심리적으로 어떤 얘기를 해도 안 들린다는 뜻이었다. 기자회견 원문을 읽어봐라. ‘타협 없는 주장을 해온 관성과 가속도로 인해 고민 한 번 해보지 않고 바로 거부하지 마시고 이 제안을 숙고해 주실 것을 4개 세력에 간청 드린다’고 돼 있다. 박 전 대표에게만 한 말이 아니었다. 기자회견 후 일문 일답 과정에서 나온 말은 ‘제발 박 전 대표께서 잘 숙고해 달라’는 뜻이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실상 결별이다’ ‘반란이다’란 표현까지 쓰고 있다. 심정이 어떤가.
“안타깝다. ‘정치 철학이 다르면 친박이 아니라는 발언이 박 전 대표의 뜻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유정복 의원이 ‘어쩔 수 없다’고 한 걸 보면 유 의원의 메시지는 박 전 대표의 뜻이라고 보면 되지 않겠나.”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말했지만 내 발로 걸어 나갈 생각이 없다. 박 전 대표와 나의 관계가 제3자의 입을 통해 정리될 게 아니지 않느냐. 그런데 주변에서 ‘친박이 아니다’라고 말을 쏟아내는 것이 안타깝다. 그것은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것밖에 안 된다.”
-지금 박 전 대표에 대한 생각은 어떤 것인가.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 전 대표와 통화는 안 했나.
“사실 대화가 끊긴 지 오래됐다. 지난해 5월 원내대표 출마를 말린 일이 있은 이후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통화한 일이 없다.”
-먼저 전화를 걸거나 찾아갈 수도 있지 않나.
“지난해 원내대표 얘기가 나왔을 때 당을 위해 내가 맡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출마를 못하게 했고 나도 그 말을 받아 들였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냉각기였다. 박 전 대표가 연락을 하리란 생각도 했다. 나는 박 전 대표와 인연을 맺은 후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내 인생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정책과 관련한 소신이 다르다고 해서 이렇게 끝내려 한다면 너무 허무한 것 아니냐. 내가 (박 전 대표에게) 그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이번에도 측근을 통해서 얘기를 듣는 것은 좀 그랬다. 이번 일을 겪는 와중에 박 전 대표 주변에 있는 사람 중 화장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이들도 있을 거다.”
-계파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치를 하려 한다는 말도 나온다.
“자기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이 자기 정치를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걸 가지고 어떤 집단에서 혼자 단독 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비하하는데 그건 유치한 생각이다. 서로 힘을 모아 정권을 잡아야 한다. 또 국회의원은 공적인 사명감이 있는 것 아니냐. 이번 일도 공적인 사명감에서 소신 발언한 것이다.”
박근혜 대표-김무성 사무총장 때 가까워져
박 전 대표와 김 의원이 가까워진 것은 박 전 대표가 2005년 당 대표 시절 김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으면서다. 김 의원은 이 인연을 계기로 2007년 이명박 대통령과의 경선에서 박 전 대표의 곁에 선다. 두 사람은 2006년 무렵 경선 캠프 구성 문제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김 의원은 하루라도 빨리 캠프를 만들자고 했지만 박 전 대표는 반대였다. 신뢰로 묶인 두 사람이었지만 스타일은 판이했다. 박 전 대표는 신중한 반면 김 의원은 직설적인 편이다. 박 전 대표는 원칙을 고수하려는 편이지만 김 의원은 정치는 역동성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후보 경선 때는 김 의원이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다. 경선이 열렸던 2007년 8월 20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스탠드에 앉아 공식 발표가 나기 전 현장 정보를 입수해 양 후보의 득표수를 세던 장본인이었다. 그 수치는 공식 결과 발표가 되기 전 박 전 대표에게 보고됐다.
김 의원은 2008년 총선 때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다. 박 전 대표는 공천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 “살아서 돌아오라”고 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 의원은 영남을 중심으로 ‘무소속 친박 바람’을 일으켰다. 살아 돌아온 그는 친박 내에서 좌장 위치를 공고히 했다. 이후 그런대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온 두 사람은 지난해 5월 ‘김무성 원내대표설’이 나오면서 틀어졌다. 당 주류 측이 김 의원의 원내대표 출마를 권유했고 김 의원도 나갈 의사를 보였지만, 박 전 대표가 반대하면서 뜻을 접었다. 김 의원은 이때 상심이 컸다. 당시에는 사람들과 만나서도 가능하면 박 전 대표 얘기를 피하려고 할 정도였다.
이후 냉랭한 기류는 온기로 바뀌지 않았다. 김 의원이 지난해 10월 ‘세종시 신안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냉기는 더 돌았다.
박 전 대표 주변에 회심의 미소 짓는 이 있을 것
이런 곡절을 겪으면서 박 전 대표도 김 의원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을 것이란 게 주변의 얘기다. 무엇보다 세종시 문제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판에 친박 좌장이라는 김 의원이 세종시를 만든 근본 취지에 대해 생각이 다른 점을 박 전 대표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김 의원이 “관성적으로 거부하지 말아달라”고 얘기한 것은 평소 자신의 속내를 숨기지 못한 특유의 어법이긴 하지만 자칫 박 전 대표가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게다가 김 의원은 평소 지인들과 만나 취기가 오르면 박 전 대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이를 박 전 대표가 전해 듣지 않았을 리 없다.
반면 김 의원도 박 전 대표에 대해 섭섭한 면이 없지 않다. 박 전 대표와 인연을 맺은 후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지만 박 전 대표가 그런 점을 잘 알아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다. 또 김 의원은 4선의 중진인 만큼 활동 반경을 넓혀 자신의 정치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원내대표 출마가 좌절됐을 당시 실망이 컸던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평소 정치는 절충과 협상이란 점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신뢰와 원칙을 앞세운다. 이런 정치적 신념과 스타일의 차이도 두 사람이 자주 부딪칠 수밖에 없게 하는 요인이다.
김 의원이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가까운 점도 갈등의 한 요소로 보는 이도 있다. 김 의원은 상도동계 출신이다. YS는 경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 대해 두 사람의 소통 문제를 지적하는 의원들도 있다. 한 친박 의원은 “두 사람이 서로 먼저 다가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박 전 대표와 가까이 있는 이들이 만나거나 통화할 기회라도 마련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신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