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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밴쿠버] ‘에이스’ 성시백, 좌절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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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부터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에이스로 활약해온 성시백(23·용인시청). 그는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남자 1500m(14일·한국시간)에서 동료 이호석(24·고양시청)에게 부딪혀 다 잡았던 메달을 놓쳤다. 안타까움이 채 잦아들지도 않은 21일.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엄에서 열린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그는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둔 순간까지 1위였다. 하지만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에게 추월당한 데 이어 샤를 아믈랭(캐나다)에게 0.006초 차로 2위마저 내줬다. 2위까지 주어지는 결승행 티켓을 잡는 데 실패한 성시백은 순위전(파이널B)에서 1등으로 들어오고도 어깨싸움을 지적 받아 실격 처리됐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성시백의 미니홈피에는 위로의 글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그는 오히려 팬들을 위로했다. “아쉬웠지요. 그렇지만 괜찮습니다. 제 주종목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500m와 계주(5000m·이상 27일)가 남아 있으니까요.” 성시백은 경기 후 말없이 경기장을 떠났다. 받지 않을 것 같았지만 혹시나 해서 그와 통화를 시도했다. 마음을 다잡은 듯 목소리는 무척이나 담담했다.

국내에 남아 아들을 응원하고 있는 성시백의 아버지 성명제(58)씨는 이날 1000m 경기를 보지 못했다. 1500m의 불운이 자신이 중계를 지켜본 탓인 것 같아서라고 했다. 대신 그는 이날 한 사찰을 찾았다. 성씨는 “두 번의 실패를 겪은 아들이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중학교 때 담력을 키워주려고 한밤중 공동묘지에 데려가 혼자 있게 한 적도 있다. 기특하게 버텨냈던 아들”이라며 “대학원(연세대)에서 스포츠심리학을 전공한 것도 (스스로를 다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을 직접 응원하러 밴쿠버로 날아간 성시백의 어머니는 최근까지 아들의 메달을 기원하며 불경을 필사했다.

성시백은 순발력이 좋다. 단거리인 500m의 성패는 출발이 좌우하고 순발력이 그 열쇠다. 1000m 경기가 끝난 뒤 김기훈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도 “(성)시백이는 그동안 500m에서 강세를 보여 상당히 기대하고 있다. 스타트가 아주 빠르다”고 얘기했다. 1000m와 1500m에서는 경쟁자였던 대표팀 동료들도 계주에서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원군이다. 통화 말미에 성시백은 “남은 기간 훈련 잘 해서 좋은 모습 보여 드릴게요”라고 얘기했다. 그는 좌절하는 대신 앞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더 이상 불운이 빌붙을 곳은 없어 보였다. 그에게는 아직도 2관왕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500m와 5000m 계주다.

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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