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간첩 잡는 돈' 빼돌렸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2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안기부 예산의 신한국당 선거자금 전용문제에 대해 '간첩 잡는 돈을 빼돌린 범죄행위' 라고 규정했다.

안기부 자금 성격을 놓고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명확한 근거가 있어서 일 것이다.

현재 검찰은 당시 안기부 직원 명의로 발행한 국고수표를 증거로 들어 선거에 전용된 1천1백90억원이 모두 안기부 예산이며 구속된 안기부 운영차장 김기섭씨도 시인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당시 안기부 예산이 5천억원 전후였고 그 60%가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였는데 그 4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전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는 안기부 청사 건립비를 완공 후에도 계속 받거나, 아니면 2~3년 전부터 안기부 예산을 수백억원씩 빼돌렸을 것이라는 추정을 내놓고 있고,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통치자금을 끌어썼거나 또는 기업에서 모은 돈을 안기부 계좌를 통해 세탁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만약 수백억원의 돈을 수년간 용처없이 빼돌려도 정부가 눈감고 있었다면 이야말로 명백한 국고횡령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또 만약 그것이 통치자금이거나 기업으로부터의 모금이라고 한다면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이 정치자금 한 푼 안 받겠다고 주장해 놓고는 예산을 정치자금으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다른 계좌를 통해 모금했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이런 의혹들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돈의 성격에 따라 과연 간첩잡는 안보자금을 빼돌린 것인지, 아니면 불법적인 정치모금 행위를 한 것인지가 규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고리를 쥐고 있는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 강삼재 의원의 설명은 전혀 석연치 않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해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분명하게 자초지종을 밝혀야 한다. 만약 그가 검찰의 수사가 일방적이라는 것을 입증할 명확한 증거를 내놓는다면 우리는 특검제 도입을 강력히 지지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