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임스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 특별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제임스 베이커는 탈(脫)냉전 현대사의 중요한 증인이자 미공화당 외교정책의 핵심 조언자다.

그는 공화당이 '팍스 아메리카나' 의 건설기라고 주장하는 '레이건-부시' 집권기(1981~93)에 백악관비서실장.국무장관.재무장관을 지냈다.

그 기간 중 독일이 통일됐고 소련이 해체됐다. 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등장과 함께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했던 베이커는 지난해 11월 미 대선 개표파동과 함께 다시 등장했다.

그는 쟁쟁한 변호사들을 이끌고 플로리다 재개표 전쟁의 공화당 야전사령관을 맡아 결국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부시 정권에 미칠 그의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중앙일보는 최규선(崔圭先)도쿄대 객원연구원과 함께 지난 3일 휴스턴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베이커 전 장관을 만났다.

인터뷰는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의 대통령 당선확정 이후 동북아 언론으로선 처음이라고 그의 정책보좌관이 설명했다.

- 부시 주지사의 당선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가 레이건이나 부시 전 대통령과 똑같이 분별 있는 정책을 따를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정책들이 18년간의 경제호황을 창출하고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국제적으로 이는 '힘을 통한 평화' 를 의미합니다."

- 분열의 후유증이 큰데 부시 당선자가 미국을 통합시킬 수 있을까요.

"부시는 기질적으로 타고난 통합자입니다. 텍사스 주지사 시절 그는 주의회 민주당 의원들과 긴밀히 협력해 세금을 감면하고 학교제도를 개혁했습니다. 이제 그는 연방의회 민주당 의원들에게 손을 내밀어 세금감면.교육개혁 등의 입법화를 위해 공통의 기반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 북한은 최근 서방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개방할 수 있을까요.

"북한은 절망적인 심정으로 서방국가.남한.일본과 관계를 열었습니다. 어느모로 보나 북한은 실패한 국가입니다. 북한은 국민도 제대로 못 먹이고 있습니다. 북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남한의 7.5%밖에 안됩니다. 북한은 지도자들이 허용하는 한도까지 외부세계에 개방될 것입니다. 문제는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북한 정권은 인민에 대한 통제를 잃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당국은 통제력을 잃지 않으면서 얼마나 개방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면서 낮은 수준에서 신중하게 개방할 것으로 보입니다. 작은 타협은 가능할지 몰라도 경제.정치제도의 전면적인 자유화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봅니다."

- 차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북한은 외교적으로 외부세계에 문을 열고 있고 이것은 계속 장려돼야 합니다. 진행 중인 남북한의 화해도 지지를 받아 마땅합니다. 미국은 이런 변화를 현실로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이 대량 살상무기를 포기하지 않고 미사일을 설계.제조.수출하는 한 미국은 북한에 대해 힘과 결단의 정책을 견지해야 합니다."

-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對北)정책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클린턴 행정부가 대북관계에 있어 근본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봅니다. 북한에 대해 당근이 너무 많고 채찍은 너무 적었지요. 99년 페리보고서는 당근 투성이고 채찍은 없었습니다. 지난 여름 미국은 북한에 대한 무역제재를 완화했습니다. 북한이 또 다른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말입니다. 평양에 전달된 메시지는 불행히도 '범죄에는 이득이 따른다' 는 것이었습니다. 협박.허세, 공허한 약속, 무의미한 양보의 대가로 북한은 아시아에서 미국 원조의 최대 수혜자가 됐습니다.

북한은 무기체제 개발을 지속해 남한.일본, 그리고 암묵적으로 미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세계의 테러지원국이나 단체에 무기를 계속 수출하고 있습니다. 자국 인민의 인권을 계속 유린하고 있으며 약 20만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스탈린 시대의 강제노동수용소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트루먼에서 레이건과 부시에 이르는 미국의 대통령들은 세계적으로 공산주의를 봉쇄했고 이겼습니다. 소련에 한푼도 바치지 않고 말입니다. 왜 클린턴 행정부가 이와 상반되는 전략이 한반도에서는 효과를 보리라고 믿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클린턴 대통령이 방북을 포기한 것은.

"다행입니다. 그의 방문은 평양에는 굉장한 선전거리가 됐을 것이고, 아무 성의도 보이지 않은 북한에 거저 주는 거대한 당근이 됐을 것입니다."

- 미국은 행정부의 교체와 관계없이 대외 정책의 중요한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전통이 있지 않습니까? 지난해 10월 북한특사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의 미국방문 후 발표된 양국 공동성명은 양국의 '전반적인 관계진전' 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대북 관계개선을 계속 추구하지 않을까요.

"제가 대통령 당선자나 그의 각료들을 대변해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임 행정부 정책에 대한 재평가가 있은 후에야 새 행정부의 협상이 진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대북협상은 세가지 원칙을 깔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남한 안보에 대한 절대적인 실천약속입니다. 둘째는 북한이 대량 살상무기와 운반체계를 개발.확산하는 것에 대한 확고한 반대입니다. 셋째는 모든 합의는 검증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레이건은 '믿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 는 말을 모스크바와의 협상에서 수칙으로 제시했습니다. 부시도 북한과 협상함에 있어 이를 금언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 부시 행정부는 제네바 합의를 비롯한 양국간의 약속을 준수하겠지요.

"제네바 합의는 존재하고 미국은 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워싱턴 당국은 북한도 합의를 철저히 준수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 부시 행정부가 북한 미사일 난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평양은 미사일과 미사일 기술을 수출해 정권을 지탱할 자금을 벌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태평양상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다른 국가에 미사일을 수출하는 건 자국이 필요로 하는 재정원조를 쫓아버리는 결과밖에 안된다는 것을 북한에 주지시키고 미국과 남한 또는 일본을 겨냥한 미사일 발사를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 부시 당선자가 선거 때 공언한 국가미사일방위(NMD)에 대해 러시아.중국뿐 아니라 일부 우방까지 반대하고 있는데.

"부시나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파월은 공식적으로 NMD 추진 가속화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부시는 NMD를 지지해온 도널드 럼스펠드를 국방장관으로 지명했습니다. 북한이 NMD를 구실삼아 미사일 개발을 지속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계획을 중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 남북의 통일문제를 어떻게 조망합니까.

"통일은 바람직할 뿐 아니라 불가피합니다. 독일 통일은 동독 경제의 완전한 파탄과 동독 정부의 완전한 실패 이후에 이뤄졌습니다. 실패한 공산주의 국가 정부의 항복과 성공한 민주주의 국가 정부의 인수가 뒤따른 겁니다. 북한 경제는 실패했습니다. 평양은 자국민을 먹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영토와 인민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간에, 통제경제와 시장경제간에, 그리고 노예화된 국민과 자유로운 국민간에 실행가능한 합병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가까운 장래의 최선은 남북한이 경제.정치적 협력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평화와 화해를 이루는 것입니다.

한반도 통일이 어떤 경로를 거칠지 쉽게 예측하기가 어렵군요. 나의 확신 중 하나는 완전하게 통일된 한국은 오늘날의 남한과 매우 비슷한 형태가 될 것이란 점입니다. 민주적이고 시장경제를 이루며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국가가 되겠지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한은 성공했고 북한은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남한 당국자들에게 충고한다면 서두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당신들 편에 있습니다."

만난 사람= 최규선 도쿄대 객원 연구원

정리〓김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