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밴쿠버] 아! 막판 반 바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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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는 ‘마의 구간’에서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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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범은 마지막 200m에서 샤니 데이비스(미국)를 넘어서지 못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1000m에서 이 구간은 ‘마의 구간’으로 불린다. 숨이 턱에 차오르고 에너지도 거의 고갈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모태범은 18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m 결승에서 1분09초12로 2위를 기록했다. 금메달은 1분08초94로 골인한 데이비스가 차지했다.

16조까지 레이스를 마쳤을 때 모태범은 1위였다. 이 후 3개 조가 더 남았지만 경계할 선수는 2006년 토리노 올림픽 이 종목 금메달리스트 샤니 데이비스 정도였다.

마지막 19조의 데이비스가 600m 구간을 통과한 순간 기록은 42초01. 여기까지의 기록은 모태범보다 0.26초 뒤져 있었다. 모태범의 금메달 희망이 부풀어 가는 순간 데이비스의 팔이 힘 있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데이비스는 마지막 400m 구간에서 폭발적인 스퍼트를 내더니 단숨에 모태범의 기록을 앞서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1000m 종목에서는 마지막 반 바퀴를 도는 200m 구간을 선수들은 ‘마의 구간’이라 부른다. 체력이 한계에 달하면서 죽을 듯한 고통을 느끼는 구간이다. 공식 스플리트 기록(구간 기록)으로는 마지막 400m 기록만 확인할 수 있는데, 이날 승부는 바로 여기에서 갈렸다. 데이비스는 이 구간에서 제대로 스퍼트를 내면서 금메달을 가져갔다.


이규혁(32·서울시청)은 600m 구간기록까지 전체 1위였지만 후반에 급격히 스피드가 떨어지며 9위로 밀렸다.

레이스 내내 전력을 다해야 하는 500m와 달리 1000m는 구간별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초반 200m를 스타팅 구간, 200~800m는 페이스 조절 구간으로 나눈다. 그리고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반드시 후반 200m에서 속도가 유지돼야 한다.

마지막 스퍼트의 폭발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지표는 바로 손이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의 윤성원 박사는 “스케이팅에서는 팔과 다리의 협응(協應) 작용이 중요하다. 손을 강하게 흔들며 손끝에서 힘을 뿌려줄수록 스케이트 날 끝으로 전달되는 힘도 세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스케이트 선수들은 하체 못지않게 팔 근육 강화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에게는 허벅지 못지않게 팔의 힘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규혁은 후반부에서 팔의 힘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페이스도 뚝 떨어졌다.

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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