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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사막 남극을 찾아서](25)세종기지를 떠나며(마지막회)

중앙일보

입력

세종기지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 만 5년간을 준비했던 남극 방문이었기에 세종기지를 떠나는 아쉬움은 무척이나 크다.

필자는 지난해 11월4일 한국을 출발했다. 3달이 훌쩍 지났고 그 중 2달을 세종기지에서 보냈다. 번잡하고 치열했던 서울을 떠나 세상에서 가장 한가롭고 아름다운 이곳에서 책을 쓰고 기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필자 인생의 행운이었다. 여유있고 넉넉할 것으로 생각됐던 2달이라는 기간이 훌쩍 지나갔다. 꼭 다시 오고 싶지만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남극에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던 모든 것이 새롭게 와닿는다. 남극에서의 기억은 몸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곳 생활에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볼 수 있었던 남극의 신사 펭귄, 순한고 착한 얼굴로 사람을 겁내지 않았던 웨델해표와 성질 사나운 물개, 코끼리 해표, 알과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를 지키기 위해 사람까지도 거침없이 공격하던 스쿠아는 한국에 가서도 눈에 선할 것 같다.

멀리 보이는 마리안 소만의 빙벽이 허물어져 바다에 떨어질 때 나는 천둥소리, 바다를 떠다니다 기지주변 해안가로 몰려든 유빙이 ‘딱딱’ 깨지는 소리는 귓가를 맴돌고 있다.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던 발전기의 소음과도 이젠 작별이다.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불어 닥쳐 시야를 가리고 건물을 날려버릴 것 같았던 눈폭풍(블리자드)의 느낌은 피부에 생생하게 각인돼 있다. 필자가 세종기지에 머물던 이번 여름은 예년에 비해 블리자드가 유독 심했다. 하지만 블리자드로 생활이 불편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남극의 맛을 제대로 느껴 보라는 신의 배려로 생각돼 고맙기 까지 했다.

혹독한 환경에서 서로를 다독이고 위로하며 한해를 보내야 하는 월동대원들의 모습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짧은 여름동안 머물며 자기의 분야에서 열심인 하계대원들의 빨갛게 얼었던 얼굴도 생생하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를 믿기에 이제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온다’는 거자필반(去者必返)을 생각하려 한다. 비록 남극은 아니더라고 세종기지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필자를 세종기지에서 별탈없이 2달 가량 지낼 수 있도록 지원해준 극지연구소와 월동대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박지환 자유기고가 jihwan_p@yahoo.co.kr

*박지환씨는 헤럴드경제, 이데일리 등에서 기자를 했었으며,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박지환 기자의 과학 뉴스 따라잡기’를 연재했었다. 지난 2007년에는 북극을 다녀와 '북극곰도 모르는 북극 이야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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