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주의 탓 영국 교육 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한때 세계 최고의 대학을 자랑했던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가 미국의 하버드 같은 대학에 1등 자리를 내준 것은 '평등주의 교육'의 폐해 때문이었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가 17일 소개했다.

평등주의와 반(反)엘리트주의에 대한 신념이 '누구나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모든 대학은 똑같은 지위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을 낳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영국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국민의 2%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40%로 늘어났다.

학생수가 급증한 반면 예산 지원은 제자리 걸음을 했다. 재정이 부족한 대학들은 최상의 교수진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이에 따라 강의와 연구도 부실해졌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했던 연구소도 일반 연구소와 똑같은 지원을 받는 데 그쳐 하향 평준화가 급속히 이뤄졌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연간 1100만파운드(약 22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케임브리지대는 이 부담 때문에 새로운 교육 투자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반면 미국 명문대들은 엘리트주의에 입각한 경쟁주의를 통해 세계 최고가 됐다고 FT는 분석했다. 사회 각계의 기부로 엄청난 재원을 마련한 대학들이 최고의 학생과 최상의 교수진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버드대의 경우 200억달러에 달하는 기금의 상당 부분은 32만명의 졸업생에 의해 조달됐다.

소수 정예주의에 입각해 연간 1650명만 선발하는 하버드대는 가만히 앉아 입학생을 기다리지 않는다. 매년 수십개의 도시를 순회하며 실력있는 학생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벌인다. 실력만 있으면 가정형편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대학은 학부모의 연간 소득이 4만달러 이하인 학생에겐 학비를 면제해줬다.

FT는 "가난한 집 자녀도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평등주의적 꿈을 실현한 것은 하버드의 경쟁적인 시장 제도지, 국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밤에도 미 명문대 캠퍼스의 도서관과 대부분의 연구실에 불이 켜져 있지만, 옥스퍼드에서 불이 켜진 곳은 식당뿐"이라는 말도 있다. 영국에서는 최근 엘리트주의 교육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한경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