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밴쿠버] 깜짝 금메달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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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금메달을 딴 그는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 15일(현지시간)이 생일인 그는 “생애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모태범(21·한국체대)은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기대주였다. 그러나 누구도 밴쿠버 올림픽 500m 금메달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가 한국 올림픽 사상 첫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000m와 1500m가 주력 종목인 모태범은 18일 열리는 1000m 결승을 앞두고 500m 구간 속도 훈련을 한다는 생각으로 레이스에 임했다가 ‘깜짝’ 금메달을 따냈다. 모태범이 금메달을 따자 각국 기자들은 한국 기자들을 붙들고 “모태범이 누구냐. 위키피디아(인터넷 백과사전)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며 ‘모태범 공부’에 열중했다.

총 20조 중 13조에 배정된 모태범은 1차 시기에서 월드컵 랭킹 9위의 강호 얀 스미켄스(네덜란드)와 함께 경기를 펼쳤다. 초반 100m 기록은 9초63, 썩 좋은 출발은 아니었다. 하지만 체력에 자신 있는 모태범은 계속 피치를 올리며 역주, 34초92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1차 시기 1위를 차지한 미카 포탈라(핀란드)에 이은 2위의 기록이었다.

2차 시기에는 캐나다의 ‘스피드 영웅’ 제레미 워더스푼과 같은 조에 편성됐다. 천둥 소리와 같은 캐나다 홈 팬들의 함성 속에서도 모태범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총성 소리에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그는 초반 100m에서 9초61, 전체 34초90을 기록했다. 마지막 조를 남긴 상황에서 동메달을 확보한 것이다. 마지막 조에서는 1차 시기 1위였던 포탈라와 3위 가토 조지(일본)가 맞붙었다. 두 선수 모두 1차 시기보다 기록이 떨어지면서 모태범의 금메달이 확정됐다.

14일(한국시간) 5000m 은메달을 따낸 이승훈(한체대)의 비결이 쇼트트랙 훈련에 있었다면 모태범의 500m 금메달은 ‘중·장거리 훈련’의 결과물이었다. 스피드 대표팀 김관규 감독은 “오늘 정빙기 고장 때문에 1시간30분 정도 경기가 지연되면서 이규혁이나 이강석 등 다른 선수들의 몸이 확 풀려버렸다”고 했다. 단거리 선수들은 몸이 확 달아올랐다가 금방 풀리는데, 중·장거리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경기 지연에 덜 민감하다는 얘기다. 이날 이강석의 첫 100m 기록은 9초54(1차)와 9초53(2차)으로 모태범의 기록(1차 9초63, 2차 9초61)보다 훨씬 좋았다. 하지만 100m 이후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전체 기록이 모태범보다 떨어졌다.

김 감독은 “1000m, 1500m에 단체 추발까지 소화하는 태범이는 체력이 매우 좋다. 다른 선수들은 좋지 않은 빙판 상태에 고전했는데, 힘 좋은 태범이에게는 빙판이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밴쿠버=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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