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경성여고보(현 경기여고)·경성사범학교(현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경북 청도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1937년 결혼 뒤에는 송 명예회장이 부흥부 장관과 재무부 장관, 초대 수출입은행장, 동양나일론 회장 등을 두루 지내며 한국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내조에 힘썼다.
고인은 특히 동양화와 서예에 조예가 깊어 수차례 국선에 입상했다. 이런 특기를 발휘해 고인은 벨기에 대사, 국제로터리 이사, 한미협회장 등을 지내면서 대외 교류가 잦았던 송 명예회장의 외국인 지인들에게 손수 그린 한국화를 선물하는 등 특유의 ‘한국미(美) 내조’로 유명했다. 국제 봉사단체인 국제로타리에도 참여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선한 여성상’을 세계에 알리고자 애썼다. 동갑내기 부부의 금슬은 고인의 와병 중에도 잔잔한 화젯거리였다. 송 명예회장은 고인이 와병 중이던 지난 9개월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병 문안을 했다고 한다.
고인은 아들 동진(LEI㈜ 사장)씨, 딸 원자·길자·광자·진주씨 등 1남4녀를 두었다. 다섯 자녀들에게는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며 솔선수범을 강조했다고 한다. 네 딸이 모두 경기여고를 졸업해 동창회로부터 ‘다섯모녀상’을 받기도 했다.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전 상공부 장관),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 조석래 전경련 회장(효성그룹 회장), 재미 사업가 주관엽씨가 사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8일 오전 8시, 장지는 충남 천안 공원묘원이다. 02-2072-2010
이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