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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격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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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은 불안을 느끼기 쉽다. 혹시 사고를 낸 차는 아닐까, 홍수 때 물에 잠겼던 차는 아닐까…. 차주나 딜러는 이를 잘 알고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줄지 의문이다. 그래서 속아 사지는 않을까 찜찜하다.

이처럼 파는 쪽은 상품의 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반면 사는 쪽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가리켜 경제학에서는 '비대칭정보 시장'이라고 한다. 미국의 조셉 스티글리츠, 조지 애커로프, 마이클 스펜스 교수는 이에 대한 연구를 집대성한 공로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들은 정보의 불균형과 이에 따른 시장의 왜곡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시장은 완전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기존 경제이론의 전제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 가운데 애커로프는 중고차 시장을 예로 들었다. 그는 보통 상품의 값이 싸지면 수요가 늘어나는 게 정상이지만 중고차는 다르다고 봤다. 중고차 값이 싸지면 품질도 나쁠 것이라고 소비자들이 불안해 하는 바람에 오히려 수요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게 심해지면 시장이 아예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각각 지니고 있는 정보가 크게 차이 나는 데 따른 현상이다.

대학의 수시모집도 따지고 보면 이와 비슷하다. 고교 졸업생의 품질은 공급자인 고교가 가장 잘 안다. 대학은 고교가 매긴 내신을 보고 그들의 실력을 감 잡을 수 있다. 고교와 대학 사이에 정보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교가 대학에 전해주는 정보가 영 미덥지 않다. 상품에 비유하면 가격과 품질의 신뢰도가 낮다는 얘기다. 비싸면 품질도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적잖다. 이때 득을 보는 사람은 실력이 부족한데도 뻥튀기 내신 덕에 합격한 응시생일 것이다. 이들에게 밀려 좋은 실력이지만 내신이 모자라 낙방한 사람이 가장 큰 피해자다. 우수 학생을 뽑으려는 대학도 피해자다. 정보의 격차에서 비롯된 시장의 왜곡인 셈이다.

수요와 공급이 제대로 짝지어지려면 품질(능력)에 맞는 믿을 만한 가격(내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교에서 내신을 부풀리는 행위는 여전하다고 한다. 이것이 대입의 비대칭정보 시장을 더욱 고착시키지는 않을까.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