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은행 감자 윗사람부터 책임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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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조3천억원의 공적자금이 날아가 버린 데 대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문책을 언급하면서 책임론이 비등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정책 실패이기 때문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 거나 "또 책임론이냐" 고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번에도 '힘없는' 은행 임원들과 부실 기업주에게만 책임이 지워질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오고 있다.

물론 책임 소재를 분명히 따지기 어렵고 현실적으로 책임을 묻는 방법도 마땅찮은 게 사실이다.

또 책임론이 마녀사냥식으로 전개돼선 더욱 안된다. 8조여원의 공적자금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장관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은 선의(善意)의 투자자들이 개인 재산을 날린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추후 감자는 없다" 는 전직 재정경제부장관의 발언도 분명히 있었다. 이처럼 지난 환란(換亂), 대우차.한보의 매각협상 실패 당시와 달리 원인 제공자가 있고 손실을 본 사람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도 정책적 실패 운운한다든가,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선 우선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책임부터 밝혀야 한다. 3분기 실적을 발표할 때만 해도 순자산이 3조원 남아있다고 했던 6개 은행이 얼마 후 금융감독위원회 실사에선 모두 완전 자본잠식된 것으로 평가된, 그 경위가 밝혀져야 한다.

은행의 허위 공시 탓인지, 금감위가 잘못 조사했는지, 평가기준이 달라서였는지가 분명해져야 한다. 은행들이 투자자 유의 공시를 안한 이유는 무엇인지와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 공시를 승인한 금감원의 경영감독 책임도 밝혀야 한다.

8조여원의 공적자금이 잘못 관리된 데 대한 책임 소재도 따져야 한다. 결정과 관리 책임을 맡은 금감원.재경부.예금보험공사 간부들과 운영 책임이 있는 은행장 등 임원들은 물론 전.현직 재경부장관과 금감위원장 등의 잘못은 없었는지 등을 면밀히 밝혀야 하고 문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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