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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폭설 뚫고 피어난 공동체 정신 ‘스노셜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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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기록적인 폭설이 미 동부를 덮친 가운데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시 주민들이 세인트 조셉 거리의 캐비지 힐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제설 인부들과 힘을 합쳐 막힌 도로를 뚫는 등 공동체 의식을 보여줬다. [랭커스터 AP= 연합뉴스]

미국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시의 고등학교 영어교사 메러디스 헤드릭(36)은 9일(현지시간) 출산 예정일을 맞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러나 나흘 동안 몰아 닥친 폭설 때문에 집 앞 도로는 눈밭이었고, 자동차 역시 안테나만 보일 정도로 눈에 파묻힌 상태였다.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이 소식을 들은 이웃 주민 6명이 삽과 전동 제설기를 들고 뛰어나왔다. 이들은 헤드릭이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도로와 자동차에 쌓인 눈을 말끔히 치웠다. 병원에 무사히 도착한 헤드릭은 “큰 곤경에 처해 어쩔 줄 몰라 할 때 갑자기 동네 주민들이 삽을 들고 나타나 차 길을 만들어 줬다”며 “너무나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미 동부지역에 내린 기록적인 폭설 와중에서 이처럼 미국인들의 공동체 정신(Community Spirit)이 큰 빛을 발휘했다고 워싱턴 포스트(WP)가 11일 전했다. WP는 폭설로 인해 정전이 돼 버린 이웃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함께 하룻밤을 보내거나, 4륜 구동차를 가진 주민들이 응급 사태에 처한 이웃을 수송해 주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다며 “이들이야말로 폭설사태의 승리자”라고 평가했다. 또 미국인들이 위기를 맞아 서로 돕는 모습을 눈(snow)과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소셜리즘(socialism)을 합성해 ‘스노셜리즘(snowcialism)’이란 신조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폭설사태의 또 다른 승리자로는 시간대별 상황까지 정확하게 예보해 대형 사고 방지에 기여한 국립 기상청이 꼽혔다.

일요일인 7일 미국 프로풋볼 챔피언 결정전인 수퍼보울을 독점 중계한 CBS 방송도 이번 폭설사태의 승자 반열에 올랐다. 폭설이 주민들을 집 안에 고립시키는 바람에 1억650만 명이 수퍼보울 중계를 지켜봐 미국 TV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WP는 이번 폭설사태의 패배자들도 지목했다. 첫손가락에 꼽힌 게 정치인이다. 정치 지도자들과 선출직 고위 공무원들은 나흘 동안 업무를 아예 중단해 버리는 등 비상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드러냈다. 마비상태에 이를 정도로 멈춰서버린 교통 시스템을 관장하는 교통당국, 가장 많은 가입자들의 정전사태를 야기한 전력회사 펩코, 지붕의 안테나 접시가 눈에 파묻혀 제 구실을 못했던 위성TV 가입자들도 패배자 범주에 포함됐다.

한편 두 차례 폭설에 이어 워싱턴DC 일원에 조만간 또다시 눈이 내릴 것으로 전해져 당국과 주민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기상청은 다음 주 초인 15일께 워싱턴DC와 버지니아·메릴랜드주에 눈이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다. 현재까지는 “눈이 오는 것은 확실하지만 소량일 것”이라고 밝혔지만 좀 더 정확한 예보는 주말께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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