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언론을 상대로 장난치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나라당의 이른바 '대권문건' 을 둘러싼 여야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민주당은 언론인 성향 분류관련 문건이 2건 더 있다고 공격하고, 한나라당은 조작이라며 민주당측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예산 심의는 뒷전인 채 엉뚱한 정치공세나 벌이는 여야 행태가 한심스럽다.

우리는 이미 한나라당의 해괴한 작태를 비판한 바 있다. 특히 신문사 논설 집필진을 '우호' '적대' 로 분류하고 적대적 인사의 비리를 축적해야 한다는 내용엔 아연해진다.

언론을 상대로 공작정치를 펼치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한나라당은 당내 기구에서 만든 '습작' 에 불과하다고 해명하고 李총재가 유감을 표명했으나 그걸로는 부족하다.

문건에 담겨 있는 발상 자체가 언론 전체에 대한 모독이자 언론자유 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큰 중대사안이다. 李총재의 보다 성의있는 해명.후속조치와 사과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이 문제를 계속 확대시키며 정치공세를 펴는 민주당의 정쟁적 태도도 경계한다. 민주당측은 추가 문건에 일부 언론인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명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공개될 경우 언론이 불행해진다" 는 말까지 들린다. 이 무슨 망발인가.

설령 한나라당이 만든 명단이 실제로 있고 그걸 민주당이 어떤 경로로든 확보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그건 언론인들의 개별 의지나 성향과는 무관한 일이다.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그 명단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의의 피해를 보게 됐다.

불필요한 오해로 집필활동이 위축받을 수 있고, 자칫 언론계 내부 분란으로 비화할 우려도 없지 않다.

우리는 정치권이 정쟁에 언론을 끌어들이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기를 엄중히 경고한다. 그들이 지닌 문건 내용이 무엇이든 언론을 상대로 장난을 치지 말라는 것이다.

무슨 큰 비밀이나 음모가 있는 듯 흘리거나 비추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 공개 후 생겨날 불행한 사태에 대해선 정치권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