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이동관 파면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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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11일 오전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을 통해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의 사과 요구 발언을 전해 들었다. 박 전 대표는 “그 말이 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있는 대로 처리하면 될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발언은 짧았지만 거기엔 청와대에 대한 강한 불쾌감이 들어 있다는 게 측근들의 해석이다. 이 수석이 박 전 대표를 비판하고, 박 전 대표가 사과 요구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친박계 의원들은 일제히 이 수석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이정현 의원은 “청와대 수석이란 사람이 공식석상에서 당 중진을 두고 ‘결기’라는 말까지 써 가면서 인신 비방을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원은 “국무총리는 ‘계파 보스’, 국무총리실장은 ‘사회주의’ 운운, 일부 의원들은 선친(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들먹이며 박 전 대표 흠집 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상찬 의원은 “정말 황당하다. 어제는 가만히 있다 자고 나서 뭘 사과하라는 거냐. ‘황당 동관’은 딴 생각하지 말고 대통령이나 잘 보좌하라”고 쏘아붙였다. 현기환 의원은 “청와대 정무 라인과 홍보 라인이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국민 앞에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도 모자랄 판에 나서서 싸움을 부추긴다니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서상기·조원진 의원은 “이 수석이 아주 경솔하고 방자한 얘기를 하는데 그를 파면시키지 않으면 결국 대통령이 시켜서 한 얘기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수석의 사과 요구에 친박계가 일제히 반박에 나선 것은 설 연휴를 앞두고 여론전에서 청와대와 친이계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다. 친박계에선 “세종시 계획을 바꾸려는 청와대의 시도를 반드시 물거품으로 만들겠다는 게 박 전 대표의 생각이므로, 앞으로도 박 전 대표의 단호한 발언이 계속 나올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박 전 대표 측도 이번 파문이 이 대통령과의 전면전으로 확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이날 친박계 의원들이 이 수석을 향해서는 십자포화를 쏘면서도 이 대통령에 대해선 자극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 이유다. 친박계에서 온건파로 분류되는 홍사덕 의원은 “박 전 대표 주변에서 일을 거드는 사람들이 기민하게 진상을 파악해서 말씀드리지 못한 탓으로 생긴 일이고 대통령에게 미안함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그는 이날 오후 측근인 진영 의원의 부친상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접객실에 의원들이 10여 명 있었지만 이들과는 인사하지 않고 진 의원에게만 조의를 표시한 뒤 곧바로 자리를 떴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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