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추락하는 국가 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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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경제포럼(WEF)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 순위를 지난해 18위에서 올해 29위로 떨어뜨린 것은 어찌 보면 놀랄 일이 아니다. 일년 만에 11단계나 추락한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지만, 수도이전, 탄핵, 국가보안법, 과거사 정리 등 국가경쟁력 강화와는 거리가 먼 이슈들로만 떠들썩했던 지난 일년간을 되돌아보면 당연한 성적표다.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린 주된 요인은 거시경제환경의 악화와 공공부문의 후진성이다. 경기 후퇴 전망, 신용경색, 정부 지출의 낭비 등으로 거시경제환경의 순위는 지난해 23위에서 35위로 낮아졌고, 공공부문의 순위는 36위에서 41위로 떨어졌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85위), 의회의 효율성(81위), 불법 정치자금(77위) 등 비효율적인 정치가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감경기가 외환위기 때보다도 나빠지고 시장경제를 활성화해야 할 공공부문은 여전히 후진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그나마 국가경쟁력을 지탱하고 있는 기술경쟁력조차 6위에서 9위로 밀리고 있는 점이다.

WEF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기업활동 애로사항으로 정책 불안정, 비능률적 관료제, 경직적인 노동규제 등을 꼽았다. 이들 애로사항을 해결하면 국가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처방을 한두 번 들었던 게 아닌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치적.사회적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 정부는 오히려 이 같은 혼란을 부추기는 듯한 행태를 보였고, 그 결과가 일년 만의 11단계 추락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기업 애로사항을 풀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젠 이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가장 시급한 일은 기업을 움츠리게 만들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불투명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정치적.사회적 혼란을 하루빨리 수습해 예측가능한 기업환경을 만들어줘야 국가경쟁력이 살아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