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보안법·과거사정리의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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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생의 부조리를 자신의 소설의 화두로 삼았던 카뮈의 분석에 따르면 인생의 부조리에 대한 대응방법으로 종교에 귀의하는 것, 자살하는 방법, 적극적으로 인생의 부조리에 대응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소극적인 현실도피의 방법부터 적극적인 대처방법까지 역사적 인물들의 생은 이러한 유형들을 경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사 강제수사권은 부적합

역사적 부조리를 해결하는 방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해결 자체를 회피하려는 시도부터 적극적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방법까지 선택이 가능할 듯 보인다. 우리 역사의 부조리라고 말할 수 있는 과거사 정리 문제와 국가보안법 남용 문제에 대한 해결 입법논쟁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역사가 단절돼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거사 정리와 같은 역사단절 문제나 국가보안법 남용과 같은 잘못된 역사시정 문제는 시대적 과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끊어진 역사를 잇고 잘못된 역사를 시정하여 올바른 역사를 후세대에 전달해줄 시대적 과제를 인식한다면, 이 문제를 회피하려는 시도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올바른 태도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과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는 그 자체로 매우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역사인식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과거사 정리 문제에서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기구의 존재와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독립된 인원구성이 작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최근 여당이 발표한 법안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점에서 기본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사방법이나 대상범위 면에서는 다소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우선 진실규명과 화해라는 명분하에 조사대상자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이나 동행명령, 통신자료 열람 등에 의해 강제할 수 있는 강제수사권이 부여돼 있는 것은 권한남용의 가능성은 물론이고 동법의 근본 취지와 부합하기 어려워 보인다. 인권침해 소지를 야기하는 방법보다는 차분하고 실효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또한 조사대상을 법안에서 미리 정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독립적인 기구에 그 조사권한을 맡겼다면 이들 기구의 자율적 판단에 의해 조사범위가 정해지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정치적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는 조사대상의 범위를 정치권에서 미리 확정할 필요가 있는지 재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정리 문제도 현실을 포함한 역사인식에서 적지 않은 우려가 야기되고 있는 듯하다. 국가안보의 현상을 진단하는 시각차이에서 비롯된 방법론상의 차이에 대해서는 법안을 최종 정리하는 과정에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현상인식만이 옳다는 주장은 또 다른 역사왜곡을 가져올 뿐이며, 안일한 전제에서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이라면 국가안보의 공백이라는 새로운 위험요소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국가안보의 공백 없게 해야

특히 대안 입법안의 내용 중 찬양.고무죄와 불고지죄 폐지 논란에 대해서는 의견대립이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므로 합리적인 타협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사회가 성숙한 만큼 이러한 행위도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할 정도의 수준에 이른 경우로 실무상 운영된다면, 이 구성요건 행위로 인한 부작용도 상당부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성급한 폐지보다는 실무운영의 모습을 지켜보며 대안을 모색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정리 작업은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점도 있지만 새로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다. 다른 의견과의 합의점도 찾아가면서, 그리고 너무 서두르지 않으며 단계적으로 문제를 풀어가기를 감히 주문하고 싶다.

류지태 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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