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시상식 이모저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0일 오후 9시(이하 한국시간)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시청.

중앙홀 오른편 난간 2층에서 병사 두 명이 팡파르를 울렸다. 시청 정문을 통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하랄 5세 노르웨이 국왕이 차례로 입장하자 1천1백명의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서 박수를 쳤다. 군나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앞에서 안내했다.

金대통령은 연단 가까이 가운데 자리를 잡았고, 그 옆으로 베르게 위원장.군나르 스톨 부위원장 등 6명의 노벨위원이 앉았다. 하랄 5세 국왕과 소냐 왕비 등 왕실가족은 연단 아래 별도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첫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 =베르게 위원장은 金대통령을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발표했다.

베르게 위원장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한 화해의 절차를 위해 상을 수여하는 것이 시기상조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돼왔다" 면서 "그에 대한 대답으로 金대통령의 인권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이 최근 남북한 관계의 진전과는 별도로 수상후보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국제 평화노력의 역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해보려고 애쓰는 시도가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는 원칙에 충실했다" 면서 "첫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 는 노르웨이의 시인 군나르 롤드크밤의 시를 인용했다.

베르게 위원장은 넬슨 만델라.안드레이 사하로프.마하트마 간디.빌리 브란트 등에 비유하며 金대통령의 인생역정을 20분간에 걸쳐 설명했다.

이어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사랑의 기쁨' 등 두곡을 부르고 난 뒤 베르게 위원장이 金대통령에게 평화상 메달과 디플로마(인증서)를 수여하고 다시한번 기립박수가 터지면서 수상식은 절정에 달했다.

조수미씨가 안정준의 '아리 아리랑' 을 다시 축하곡으로 부른 뒤 베르게 위원장의 안내에 따라 金대통령이 수상연설을 했다.

金대통령은 상기된 표정으로 "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 라며 "다시없는 영광으로 감사드린다" 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에서 민주주의, 인권, 민족의 통일을 위해 희생한 동지들과 국민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분들에게 바쳐져야 한다" 고 말했다.

바라트 두에-정순미 부부의 불꽃같은 열정을 담은 '파사 카글리아' 가 연주되는 가운데 1시간10분간의 시상식이 끝났다. 金대통령은 하랄 5세 국왕 자리로 내려가 인사하고 기립박수속에 퇴장했다.

◇'햇볕정책' 상징물로 치장=시상식장 연단 뒤에는 해바라기와 오렌지.장미로 장식한 3m 높이의 장식기둥을 네개 세웠다.

노벨위원회측은 "金대통령의 '햇볕정책' 을 상징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한 디자인이다. 해와 관련된 해바라기와 오렌지.노란 장미로 꾸몄다" 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붉은 장미와 노란 장미를 섞어 장식했다.

연단 뒤에는 오슬로의 역사를 담은 헨릭 소렌센의 벽화, 다른 벽에는 독일군에 저항한 역사와 바다와 숲, 노르웨이인의 삶을 소재로 한 알프 롤프센의 벽화가 장식돼 있었다.

◇오슬로 시내의 환영인파=시상식이 시작되기 30분 전 오슬로 서부역 앞 아케르브리게광장에서부터 노르웨이 한국교민과 한국계 입양아들이 횃불기념행진을 벌였다.

11일 오전 2시(현지시간 오후 6시)쯤엔 오슬로시민 7백여명이 서부역광장~시청~칼 요한거리~그랜드호텔로 횃불행진을 벌였다. 이들이 金대통령의 숙소인 그랜드호텔 앞에 도착할 무렵 광장에 군중이 운집하면서 절정을 이뤘다. 金대통령은 호텔 2층 베란다에 나와 환영인파에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 2천명 어린이와의 만남=金대통령은 노벨상 시상식에 앞서 10일 오후 8시30분 오슬로시청 뒷문 앞 광장에서 노르웨이의 국제 아동구호단체인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 의 어린이 2천명을 만났다.

金대통령은 어린이 대표 마를렌 영(12.여)으로부터 '평화의 횃불' 을 받아 점화했다. 어린이들은 '세이브 더 칠드런' 주제가를 합창한 뒤 대표 4명이 金대통령에게 평화를 위한 노력에 대한 감사장을 전달했다.

金대통령은 "어린이 여러분 때문에 이 세상은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여러분의 밝은 웃음 때문에 세상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밝게 빛날 수 있다" 고 말했다.

◇국왕 오찬=하랄 5세 국왕은 관례적인 노벨평화상 관련 행사가 아님에도 시상식이 끝난 뒤 金대통령 내외를 위해 오찬을 마련했다.

이날 저녁 노벨위원회가 주최한 공식만찬에서 金대통령은 '나쁜 친구의 집은 가까이 있으나 멀리 있는 것 같고, 진실한 친구의 집은 멀리 있으나 가까이 있는 것 같다' 는 바이킹 격언을 인용한 뒤 "비행시간이 11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마치 가까운 이웃집을 방문한 듯 편안한 마음" 이라고 말했다.

오슬로=김진국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