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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책의 흐름] 인문학과 TV는 착떡궁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인문학 출판의 전반적 불황 속에 김용옥과 이윤기의 선전(善戰)은 발군이었다.

동양철학자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 시리즈(전3권)와 '도올 논어1' (이상 통나무), 그리고 소설가이자 신화연구가인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창해, 전5권)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웅진닷컴), 여기에 더한 단편집 '두물머리' (민음사)출간은 모두 올 한해의 저술이다.

물량의 규모만큼 괄목할 만한 것이 응전의 방식. 오늘의 인문학자가 어떻게 변화된 시대와 교감을 해야 하는지를 가늠케 하기 때문이다.

즉 인문 상품의 제작.유통과 관련해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징후이기도 하다.

고급독자층 위주의 이윤기와 또 달리 김용옥은 아줌마 팬을 포함한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편차는 없지 않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재야에서 내공을 쌓은 사람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이들의 성공은 우선 제도권 연구자들에 대한 통렬한 문제제기다.

대학의 인문학 강의실은 텅텅 비어가는 것과 달리 제도권 밖으로 사람들이 몰릴 때 이들은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각각 성공한 것이다.

제도권에서 고전의 자구(字句)와 씨름하는 연구자들의 노력을 폄하할 순 없지만, 김용옥.이윤기는 현실과 정면대결하는 방식으로 성취를 보인 것이다.

즉 문사철(文史哲)을 아우르는 지식, 고금(古今)을 주유(周遊)하며 풀어내는 소화된 언어만이 성공의 원동력은 아닌 셈이다.

여기에는 EBS와 KBS라는 전파매체의 효과가 지원군이었을 것이다. 인문학과 텔레비전의 만남은 디지털 기술과 텔레비전의 융합만큼이나 극적이다.

대중매체의 역기능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그 기능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대중문화 시대에 인문학도가 개발해야 할 주요한 영역임을 보여준 실례다.

각자의 약진과 관련해 미시적으로 들여다 볼 측면이 있다. 먼저 김용옥. 그의 평가가 높은 것은 '노자와 21세기' 당시의 풀어진 서술과 달리 '도올 논어1' 의 완성도에 대한 상찬(賞讚)이다.

따라서 밀도 있는 저술의 연속적 출간만이 그가 사회적 장수(長壽)를 유지하는 길일 것이다.

이윤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올 한해의 대박이 곧 전성기는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문단 데뷔 이후 20년 가까운 익명 상태를 벗어난 그가 '2000년 작은 성공' 에 취하지 않는 것은 곧 우리 사회의 지적 자산을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말과도 통한다.

그것만이 풍문으로 유포되는 인문학의 죽음, 혹은 문학의 위기와 상관없는, 의연한 문화권력을 요구하는 사회적 요구인지도 모른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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