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재 "조건만 되면 DJ 도와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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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더 강하게 밀어붙이면 쪽박이 깨질 수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얼굴)총재는 5일 당사에서 야당 총재로서의 고민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당적 이탈' 을 전제로 "내각에 인재를 추천할 수 있다" 고 말했다.

李총재 측근들은 "강공(强攻)으로 일관해온 李총재의 호흡조절 성격이 내포된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李총재가 최근 "나라 장래가 걱정이다. 대통령이 정파적 이해관계만 떠나면 도와주고 싶다" 는 말을 자주 한다고 덧붙였다.

李총재는 " '여당을 공격할 소재가 많은데 왜 좀더 밀어붙이지 않느냐' 는 비판도 받지만 일단 나라를 살려놓고 봐야 한다" 는 얘기를 측근들에게 하고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李총재의 최근 국회 등원(登院)선언이나 한전 민영화 관련법 정부안 지지 등도 같은 맥락" 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 '인재 추천' 에는 金대통령이 위기극복을 위해 야당을 동반자로 인정하면 여기에 동참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약간 다른 주장도 펴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야당의 내각 참여는 바람직하지 않다" 며 "李총재의 말도 金대통령이 당적을 이탈해 초당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데 강조점이 있는 것" 이라고 말했다.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 '인재추천' 이란 대통령이 야당 총재에게 '정부에서 인재를 널리 쓰겠다' 면 그걸 굳이 거절할 수 있겠느냐는 정도의 의미" 라며 확대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權대변인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와 당적 이탈이란 대통령이 황제적 권력이 아니라 '내각의 최고' 정도 수준으로 내려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며 '전제조건' 이 충족되기 어려움을 지적했다.

이날 李총재는 "거국내각에 참여하느냐" 는 거듭된 질문에 "우선 제의를 받아야 답할 것 아니냐" 며 미소를 지었다.

한 당직자는 "李총재가 당분간 대여(對與)공세를 늦추며 공기업 개혁 등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차기 대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고 설명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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