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이산가족과 정치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우리 문학에 비친 6.25와 좌우대립.이산가족 문제는 거의가 정치색과는 무관한 민초(民草)들의 처지와 생각에 초점이 맞춰졌다.

1978년 발표된 전상국(全商國)의 중편소설 '물걸리 패사' 의 무대는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강원도 홍천. 전쟁 와중에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 마을에 들어오면서 평화롭던 마을은 죽고 죽이는 흉흉한 살육의 장(場)으로 돌변한다.

이호철(李浩哲)의 단편 '만조(滿潮)' 도 국군이 점령한 북한지역 마을이 배경이다. 공산정권에 협력했던 이들은 전전긍긍하고, 마을 이장은 국군.인민군을 오가는 행위에 대해 "다 그놈의 몹쓸 바람 탓" 이라고 애써 변호한다.

李씨의 다른 단편 '나상(裸像)' 에서 죽을 고비를 겪으며 삼팔선을 넘어 월남했던 형제는 전쟁이 터진 뒤 국군에 징발됐다가 전투 중 인민군의 포로가 되고 만다. 이중 지병이 있던 형은 북으로 끌려가던 중 다발총에 맞아 횡사한다.

이범선(李範宣)의 '오발탄' 에서 주인공의 노모가 두고 온 북의 고향산천을 그리며 '마치 딸꾹질처럼 어떤 일정한 사이를 두고' "가자! 가자!" 고 외쳐대는 장면은 요즘도 나이 많은 이산가족들에게는 남의 일같지 않은 비극일 것이다.

물론 남이든 북이든 특정 정권이나 이데올로기에 확신을 품고 뛰어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조정래(趙廷來)의 장편 '태백산맥' 에 등장하는 염상진 같은 인물형이다.

그러나 이런 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우리 민초상(像)의 원형(原型)에 얼마나 가까운지 의문이다.

지난 주말 끝난 2차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북한측의 '정치공세' 가 두드러진 행사였다.

남측 적십자사 총재를 지칭해 '죄에 죽고 올바르게 재생하라' '몰골이 가련하다' 등 안하무인격의 언사를 해댄 북측 책임자는 별도로 치더라도, 일반 상봉자들도 우리 국민이 보기엔 짙은 정치색을 풍겼다.

"북에서 성공했어요" 라며 학위증.훈장을 내보이고 하나같이 '장군님' 칭송을 반복하는 혈육 앞에서 우리측 상봉자들은 안도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연민이 일었을까. 우리 정부의 어눌한 자세부터 문제지만 북측도 자기네 이념과 기준만이 '한반도 표준' 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정치색을 배제하고 벌이자던 상봉사업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어쩌자는 것인지.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간다' 는 6.15선언 문구가 무색해진다.

노재현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